먼저 가신 XX님 이야기

어느 개발자의 부고 앞에서: 그럼에도 끈덕지게 견디는 삶에 관하여

by 누워 사는 개발자

2025년 3월, 주위에 지인의 본인상이 생겼다. 젊은 나이에 본인상이라니. 소식을 듣고 한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다.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허망하게, 생명이 이처럼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경제적 궁핍과 '더는 쓸모없어졌다'는 자괴감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일을 놓게 된다면 저런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나 또한 우울을 앓고 있다. 20대 초반에 몇 년간 약을 먹다 중단한 적이 있고, 30대가 된 지금 다시 약에 의지한다. 죽음을 수없이 반추해 왔기에 그의 부고는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자살이 복잡한 인생을 단번에 끝내줄 '쉬운 종료 버튼'처럼 느껴졌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그날도 예약된 정신과 상담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10분이 넘도록 내게 말씀하셨다. 자살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며, 절대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고. 응급실에서 수많은 사례를 목격한 선생님은, 극심한 고통 끝에 장애를 얻고 살아남은 이들조차 결국에는 더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내가 지금 누리는 젊음과 사회적 기반, 그리고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하셨다.


한때 나는 '빼어나게 잘 살아야만' 삶의 가치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이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이들을 학살했던 히틀러의 잣대와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셨다. 그 비인간적인 잣대를 나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반성했다. 무엇보다 '자살은 내가 가장 취약하고 약해져 있을 때, 나 스스로를 살해하는 비정한 행위'라는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그 상담을 통해 깨달았다. 자살은 해결책이 담긴 버튼이 아니라, 나를 향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폭력이라는 사실을.


위의 기록은 2025년 3월의 기록을 다시 정리한 것이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겠다고, 힘들면 주변에 손을 내밀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맺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그 일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성공적인 개발자로 보였던 XX님.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이가 있으셨던 XX님. 나중엔 팀장도 되시고, 여러 개발을 하고 싶어 보직도 바꿨던 XX님. 하지만 그가 언젠가부터 쫓기듯 보직을 바꿨고, 소식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소식으로 부고를 전했다.


XX님은 생전 주변에 "이제 개발을 지속할 지적 능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평생을 바친 업(業)을 지속할 수 없게 된 개발자의 끝이 정말 '본인상'뿐인 걸까. 씁쓸함이 가시질 않는다. 작년 말, 우울증이 깊어져 집중력이 흐려져 개발에 집중하기 힘들 때마다, 나 역시 그의 전철을 밟게 될까 봐 사무치게 두려웠다.


이 글을 "이제 극복했다"거나 "나는 다르다"는 식의 공허한 장담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여전히 나는 무섭고, 여전히 한없이 약하다. 그러나 이 유약함조차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며, 그저 담담히 일상을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주에 수많은 약속을 잡아두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마지막까지 살고 싶어 했던 간절한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비난할 힘도, 마음도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곁의 사람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부시게 빼어나지 않아도, 조금은 느리고 뒤처지더라도 끈덕지게 살아남는 것. 오늘도 나는 그 지난하고도 숭고한 생존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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