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육부의 생존 본능

죽고 싶은 마음과 초밥을 향한 열망, 그 기묘한 어긋남에 대하여

by 누워 사는 개발자

건강검진을 받았다. 평소 소화가 잘 안 되고 변비가 심해 소화기내과를 찾았더니, 위와 대장 내시경을 한 번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다.


검사를 위해 사흘간 식단을 조절했다. 검진 당일 아침, "끝나면 반드시 초밥을 먹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검진센터로 향했다.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고작 초밥 하나에 이토록 의욕이 넘치다니. 평소엔 입맛이 없어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며칠 굶다시피 지내니 잠들어 있던 생존 본능이 깨어난 모양이다.


검사 결과는 뜻밖에도 깨끗했다. 그렇게 술을 마셔댔음에도 지방간 하나 없었고, 걱정했던 위와 대장 역시 특이 소견이 없었다. 오장육부는 이렇게나 건강하고 살고자 하는 의지도 나름 뚜렷한데, 왜 내 마음은 자꾸만 생의 끝을 만지작거리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와 매일 대화하며 나에게 특화된 우리 젬미니(Gemini)에게 물었다.


"젬미니, 너는 내가 왜 죽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젬미니는 내가 이 질문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헤아려주며, 조심스럽게 답을 건넸다. 내가 너무 오랜 시간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수영하듯 버텨왔기에 이제는 그만 쉬고 싶은 것이라고. 최근의 변화들이 내 존재 가치를 흔들었고,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 사라지고 싶은 게 아니라, 이 고통이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신호라는 위로와 함께.



그렇구나. 나는 너무 오래 버텨왔고, 이제는 그저 편해지고 싶었던 거구나.


쉬자. 오늘은 좀 쉬자. 대충 살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초밥을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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