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을 읽다 말고 쓰기
앨런은 고전적인 정수론의 핵심 문제들을 연구하며 공헌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튜링기계, 순서수 논리학, 마음 작용의 공식화, 비트겐슈타인의 질문, 전기 곱셈기 그리고 이제 일련의 기어 바퀴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추상과 물질 사이에 어떤 연관을 만드는 일을 대변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었고 ‘응용 수학’도 아니었으며, 일종의 응용논리학으로서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개인이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개인을 만든다. 사회보다 개인이 너무 강하면 기존과 융화되지 못한다. 혼란이 생긴다. 기존 사회가 너무 강한 개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개인보다 사회가 너무 강하면 역동성을 잃는다. 사회가 기존처럼 유지되는 힘은 있겠지만 딱 그 수준에서 멈춘다.
사회에서 융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융합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보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더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개인이 개인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융합은 자연스럽게 생긴다. 개인마다 고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유성, 개인마다 호기심을 따라갈 수 있게 하면, 굳이 이것저것 합쳐보라고 하지 않아도, 사회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합쳐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