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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뎁씨 Dec 31. 2023

풍등


늘 말하듯 연말이 싫다. 꼭 어떤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 뭔가를 해냈니? 보채는 느낌이라서. 계획 망한 누가 '너도 망했잖아?'라고 하나라도 망하길 보채는 것처럼. 룸사롱을 혼자 안 가고 꼭 어떻게든 주변을 말려들게 하는 것처럼.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술을 권하는 것처럼. 담배도 사회생활이라는 누구처럼. 내가 니 핑계가 되기는 싫거든. 인스타를 항상 즐거운 모습만을 올리며 눈꼴 시렵던, 대학시절 내 뒷담화를 종용하던 한 동기의 와이프가 송파의 먹거리골목 모텔촌에서 어떤 남자와 나오는 것을 마주친 경험 이후로 타인의 행복도 사실은 믿지 않게 됐는데. 사진만큼 선명한 불행도 없을 것 같아. 얼마 전에 누가 외모를 떠나서 사진에서 예쁘게 나오는 방법은 자신감 이랬는데, 자신감 넘치던 녀석 너는 참 멋지고 유쾌하게 웃더라, 그래 그래 멋진 놈. 근데 인스타에 카톡에 올리는 딸래미 니 안 닮았더라. 아마 앞으로도 안닮을거 같아, 닮으면 말고. 어쨌든 나는 맘에도 안 드는 니 가정 참 잘 지켜줬다, 고맙지? 난 복 받을 거야 그래.


연말엔 무슨무슨 자리가 많지. 참 싫지. 그런데 또 파티는 파티대로 싶은 마음. 빛처럼 화려했으면 좋겠지만 그만큼 생기는 어둠. 그 빛이 참 사람을 놓지 못하게 하지. 빛은 우주 너머 끝까지 간다며, 내려놓아도 눈감아도 잔광은 항상 어디로 가던 남아서, 남는다는 말은 문득 사람을 간절하게, 숙연하게 한다.


계획은 없는데, 바라는 것들만 있고, 누구는 자격이 없다는데 나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아서 얼마든지 환영할 준비가 됐다. 나는 감히 말합니다. 그런 것들이 아무것 하지 않아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날짜를 갈라서 내년이 된다고 해도 난 그리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말한다'라고 표현하는 순간들이 마음에 든다. 그 옛날의 나는 나의 어떤 질문의 정답을 한 번 만에 찾아낸 적이 있구나. 그럼 재촉하는 올해에도 내가 모르게 한 번은 해낸 게 있겠지.  


그대들의 시간에 맞추어 연말은 끝끝내 인사를 하지. 누구는 빚쟁이 마냥 끝까지 사과하라고 하던데, 글쎄, 더 엮이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사과하라고 소리치면서 눈깔이 돌아가는 모습이 고마운데?

그럼, 고마운 구경시켜줬으니까

그래. 뭐 더 많이 질투해주지 못해 미안해.

이제 이걸로 떨어져 주는 거다?

목소리만 부락카락 질러대는 아재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말로 찌를 수 있게 날카롭게 늙어서 다행이야.

인자하고 부드러운 멋진 신사가 되면 좋겠지만 그래도 차선이라고 생각해. 그대들이 내년이라 부르는 시간에 나는 그런 걸 기대해 볼게. 행복해야 해.라는 긴 편지를 써서 날린 셈, 보낸 셈, 빌어본 셈, 잊은 셈.


2023.12.31.

-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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