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 황교익
1월 1일에 떡국을 먹었는지 묻고 싶다. 떡국은 신정이 아닌 구정에 먹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우리 집은 신정 구정 둘 다 먹는다. 사실 설날 아니라도 떡국(떡만둣국)을 종종 먹는다.
떡을 좋아한다. 대학을 다닐 때 등굣길에 종로 3가 낙원상가 아래 작은 골목의 떡집을 자주 들렀다. 그곳에는 ㅇㅇ떡집, ㅁㅁ떡집 등 네 자의 이름을 한 여러 떡집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보통 예식이나 선물-폐백용 떡을 주문 판매를 받지만 일반적으로 먹는 떡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파고다 공원 돌담길 따라 초록빛 바래가는 보도블록과 아스팔트 시멘트 반섞인 희꺼먼 그 도로 사이로. 절반은 기와를, 절반은 우레탄을 씌운 제각각 조그마한 떡집들의 작고 낮은 철굴둑은 여름에도 쌔하얀 김을 뻑뻑 뿜어내고. 정장 입은 직장인, 기타 들쳐 멘 딴따라 아저씨, 화려한 몬뻬바지 빠마머리 시장 할머니들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샷시문 낡은 떡집의 행렬. 입구 입구마다 널게 진열된 때로는 구름처럼 하얗고, 때로는 쑥잎이 탐스럽게 진하고, 어떤 날은 수줍게 분홍빛 맴도는 그 떡덩이를 에워싼 팩 사이로 또 가늘게 이슬이 맺힌. 나는 그 광경을 지나칠 수가 없다.
대개 2천-3천 원 선의 떡인데 신기하게 떡값이 최근에 다시 가봐도 크게 오르지 않는 느낌이다. 보통은 그날그날 아침에 신선한 떡을 만들지만, 사실 모든 떡을 매일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전날 떡을 잘 보관했다가- 살짝 다시 쪄서 이틀 정도 판매하는 집도 있다. 이건 영업비밀인가. 눈썰미가 조금 뜨이면 오늘 한 떡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살짝 손을 얹었을 때 유달리 촉촉한 떡보다 탄력 있는 떡을, 썰어낸 결이 반듯하고 매끄러운 떡을 선택할 것. 이 정도. 사실 오래 먹다 보면 실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떡이 있어서 뭐라 정확히 과학적인 기준을 주지는 못해 미안하다.
떡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 책에서 내가 몹시 애정 하는 '떡'에 대한 민족-문화적인, 선사적인(?) 과학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첨단 과학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그런 과학의 선사적 역사가 궁금하고 흥미롭다. 오래된 과학에게도 분명 사연이 있지 않을까.
내 인생 가장 인상 깊었던 2014년 노벨 물리학상, 그 해 노벨 물리학상은 led 청색광 개발에 성공한 연구진들에게 돌아갔다. 수상 사유는 빛의 혁명. 기존의 전구보다 전력 소모 1/10, 수명 100배 이상의 효율로 더 많은 인류에게 빛을 전할 수 있다는 이유. 이로서 전력이 모자라고 자본도 가난한 개발 도상국도 밤을 더 비출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노벨상을 받은 led라 한들 인상은 깊으나, 그냥 논문 몇 장보면 바로 알 수 있으니 큰 흥미 없다. 오히려 나는 불의 발견과 그것을 사용해갔던 선사인들의 삶, 타버리고 조각난 유물들을 통해 그럴듯한 유추를 해내야만 하는 그 이야기에 더 눈길이 간다.
자 다시 떡으로. 내가 이야기에서 '떡'을 계속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우리의 주식인 '밥' 때문인데, 한반도 선사 민족의 후예인 우리는 사실 밥보다 떡을 더 먼저 먹은 과학적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떡에서 시작했다가 과학까지 갔다가 또 떡으로 돌아오는 또 과학으로 가는 의식의 흐름. 무튼 선사시대(석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다 보면 항상 이런 시루(찜틀) 토기가 발견된다. 우리야 지금은 토기-도자기가 예술 혹은 산업으로 인식되지만, 이것도 엄연한 과학이다. 인류를 정착시킨 최초의 과학, 도예.
떡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객관적(?)으로도 맛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유목-수렵으로 육식을 하는 삶을 사는 민족이 아닌, 곡물을 가루 내고 쪄내어먹는 삶을 선택하여 모인 민족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떡이 당연히 은연중에 좋아야 한다. 떡을 좋아하기 때문에 남아 있었던 민족이니까. 떡이 싫었다면 아마 진작 유목의 삶을 사는 부족이 되어 멀리 떠나갔겠지.
초기의 떡을 만드는 방법은 아마 야생벼나 기장, 보리 등 야생 곡물을 갈돌이라는 돌판에 막대로 갈아서 후 불면 겉껍질은 그나마 좀 날아가고, 장작불을 피우고, 그 위에 토기로 빚은 찜틀(시루)에 곡물가루를 넣어서 찌면 지금의 시루떡 같은 형태가 된다. 물론 하얗고 깨끗한 떡은 아니었겠지만, 대충 곡물이 먹을만치 익은 덩어리였겠지.
음식이 항상 부족한 시대이지만, 그래도 대형 움막집의 잘 사는 족장급 집안의 어린애가 먹으라고 준 떡으로 장난친다고 조몰락거리다가 찰기가 생겨서 존득한 떡이 되었을지도. 냉장고는 당연히 없어서 그냥 실온에 말려서 보관했을 것인데, 지금도 떡을 밀봉하지 않고 놔두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럼 딱딱해서 어떻게 먹느냐, 물에 풀어서 끓여먹는 것. 그럼 떡국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강가에서 잡은 잡 생선이나 조개, 잡은 동물의 뼈나 잡고기를 긁어 넣으면 지금의 떡국이 되는 것이다. 생각만 했는데 침 나왔어.
그래서 우리는 설날이 되면, 명절이 되면, 이렇게 가족들이 모여서 떡국을 먹는 것 아닐까. 선사시대 때 모여서 떡을 하고, 떡이 굳으면 끓여먹던 그 전통을. 이런 문화적인 상상력, 재미있지 않나.
하지만 요즘 떡의 위상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 떡은 식사가 아니기 때문이고, 간식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빵이나 다른 제과류에 선호도가 몹시 밀리기 때문. 하지만 떡이 위상을 지키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떡볶이.
사실 '떡볶이'라는 단어를 잘 생각해보면, 경복궁 인근 통인시장 철판에 볶아내는 기름떡볶이만 떡볶이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빨간 국물의 떡볶이는 따지자면 떡국에 더 가깝고, 국물이 좀 졸은 형태는 떡 조림일 뿐이다. 떡은 어른들 먹는 음식이라고 하면서 떡볶이는 줄 서서 먹고, 배달까지 시켜먹는 세대. 머리로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몸은 솔직한걸. 떡-떡국-떡볶이 까지 이어내려 오는 감동적인 전통, 재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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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음식의 맛. 국내 농업-축산업의 본질적인 문제 혹은 재료의 본질적인 면을 지적하여 더 맛있는 재료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신화-설화)를 통해서 어떻게 더 알고 맛있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더 집중한다.
떡볶이도 그냥 먹어도 맛있겠지만(황교익 씨는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하신다), 위에서 말한 선사시대 때부터 떡국을 먹었고- 이 떡볶이도 자세히 보면 떡국 아니냐? 이 전통 있는 음식을 먹는 게 신기하지 않냐.라고 말하면서 먹으면 더 재밌고 그래서 더 '맛있는 식사 자리'가 만들어지고, 우리는 맛있는 식사를 하게 되는 것 아닐까.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에이- 재수 없어하면서 밥맛이 떨어지려나. 나는 재미있다. 그래서 다음에 나와 떡볶이를 먹는 사람은 이 길고 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사실 위 모든 이야기들은 음식에 대한 상상력일 뿐이지, 정설 혹은 명확안 답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그러려니 유추하고 재미있을 뿐이다. 음식의 근원에 대해서 이것 저것 근거를 가져다가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근거라는 것도 온전히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지 않으므로 성립하지 않는다. 밥상 앞에서는 그냥 재미로 듣고 어울리는게 서로에게 좋은 시간일 것이다. 그나저나 철길 위에 있는 되게 멋진 떡볶이 집이 있는데, 같이 한 번 가보지 않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