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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 사용법

중얼거리다 잠들고 나면 적당히 괜찮은 아침

by 뎁씨


각자에게 각자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 사이로 각자의 삶이 느껴진다. 때로는 간격까지도. 정확하지는 않아도 그렇지 않을까 정도는.


나쁜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더불어 남 탓도 잘하지 않는다. 아마 남 탓 같은 것을 했다면 혹은 나쁜 말을 했다면 같이 게임을 하다가 난으로 놀려먹기 위해서 던진 농담 같은 것들일 것이다.


일상서 만나는 친한 친구들도 내가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 누구나 하는 은어로서의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가끔씩 살짝 소름 돋을 정신 나간 드립(?)을 꺼낼지언정. 나쁜 말은 나에게 화가 날 때 나에게 향하는 나의 마음이므로, 당신은 내가 아니므로 그것들을 들을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은 원래 당연히 내 탓이니까. 내 우주라면 온전히 내 탓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우주가 살아 있을 거라고, 그것이 우주를 책임지는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탓을 하는 것은 나와 당신을 가장 명확하고 알맞게 분리하는 말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더더욱 말할 수 없으니까.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다. 마음이 사실 많이 아프지. 이미 검고 끈적이게 굳은 목탄에 불을 끊임없이우는 느낌으로. 더 이상 탈것 없어도 그래도 매번 꾸역꾸역 잘 타들어갔지.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동생이 있다. 굉장히 바쁜 친구라서 도무지 얼굴을 볼 수가 없는 아이. 집에서도 꽤 먼, 게다가 야근이 엄청 많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제 석사학위도 있는 정말 대단한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근황을 묻다 정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어쩌다 헤어진 예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말했듯 모두가 내 탓이라 나가고 멀어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참 많은 자책을 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해맑게 '개자식'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 어떻게 잘 지내길 바라냐고. 겁나 못 지내고 못살았으면 좋겠다고. 나의 소중함을 모르는 개자식.


마음이 내려앉았다. 잘 흔들리고 있던 우주를 순간 정적이 다가가 꼬옥 안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사이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순간 정말 모르게.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떨리는 앞니 천천히 말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쁜. 년. 개 같은 년. 진짜 진짜, 나쁜 년. 나의 소중함을 모르는 진짜 나쁜 년. 나쁜 년 나쁜 년.


소리 없이 입모양 만으로도 빈 방에서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여러 번 여러 번 혼자 말을 하고. 눈물 나지 않았지만, 무거운 것이 속눈썹 아래로 차례로 굳 느낌이 들고. 꺼풀의 바깥쪽은 아니지만 깊은 안쪽으로 몇 번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고. 래, 사랑할 자격은 이렇게 얻어내는 것이구나,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미련은 미련이지만 나를 상처 준 일에 대해서 나쁜 말을 뱉어낼 수 있는 용기로.시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새로운 사람에게 말을 걸고, 떨리지만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서 데이트를 신청하고, 진정이 안 되는 눈으로 그래도 상대를 며시 쳐다보는 것, 떨리는 손으로 카페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 무서워도 피하지 않는 이런 것들이 사랑하는데 필요한 용기가 아니었고,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사랑이라는 강한 마음. 누가 아이를 다치게 하면 세상 가장 험한 말을 골라 지켜내는 엄마의 마음, 무섭기 전에 화가 나는 마음. 그것이 지켜야 할 사랑이었고 용기였다. 래. 내 마음이 다쳤는데 화가 나야지. 그게 맞는 거잖아.


사랑은 당신이 아니다. 오랫동안 나의 사랑을 우리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잠시 우리가 우리였을 때 있던 것인데. 나에게서 살아가는 내 마음은 내가 지켰어야 하는데. 미안해.


그래 맞아. 나쁜년이라고 말해야지. 나의 소중함을 모르는 나쁜년이라고. 헤어진 연인에 대해서는, 만나지 못했던 인연이 아니었던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 대해서도, 좋아하고 있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로 상처를 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편으로 싫어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꼭 한 번쯤 개자식이라고 말해야지.


그래. 도움 필요해. 아직 혼자서 저 개자식 나쁜년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 옆에서 같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등 떠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방향도 잘 모르고 그러다 혼자 또 화를 내면 내 탓으로 다시 모두 떠밀려가니까. 그런 사람을 찾았으면 좋겠어.


슬픔을 나누라는 말을 조금 알겠다. 이기적으로 슬픔을 혼자 끝까지 마주하면서 때로는 도망도 치면서, 물리적으로 잊어도 보면서, 슬픔조차 욕심을 부리는 그런 시간들을 슬픔을 멋지게 이겨내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페에서 전남친 뒷담화하는 여자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이제 나도 좀 끼워줄 수는 없는지.


누구에게나 사소한, 새로 산 예쁜 접시를 깨트려버린 슬픔도에 아무렇지 않은 것은, 조금씩 튼튼해져 가는 벽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단지 나이가 해마다 공짜로 쌓아준 벽이 아니다. 이전에 어지고 샐 때마다 조금씩 덮어간 이 조금씩 높고 튼튼해져서 꽤 적당히 안전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써 쌓은 그 벽을 넘어오는 거대한 슬픔에는 어쩌면 좋지. 슬픔은 항상 마음의 벽을 타고 넘어오고 싶어 하니까. 그러려면 슬픔은 항상 더 거대하고 깊어질 텐데. 이번의 아픔을 이겨내고 벽을 한 줌 올려내면, 다음은 더 검고 슬픈 모습으로 나를 삼키러 올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하지.


가르쳐 줬잖아. 뗏목을 띄워야지. 쪽면에 '쁘고 못된 말'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지어줘야지. 그리고 해를 하는 거지. 검은 우주에 잠겨서 휘청이지 않도록. 매끈하게 재단된 커다란 통나무 한그루 보다, 많고 작은 거친 나뭇가지를 모아서. 그러니 조금 나뭇가지를 나누어줄래? 옆에서 나쁜 말을 한마디씩 꺾어서 같이 쌓아주겠어? 내가 그것들을 밟고 용기 내어 크고 나쁜 우주를 서핑하며 즐겁게 타고 건널 수 있게.


너에게 내리는 부담이라는 장마는 언제쯤 그칠까. 나만 바쁘지 않은 건지. 세상은 너무나 바쁘다고만 한다. 내가 건네는 손은 자꾸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다. 마음이 없는 거겠지. 악수를 거절당하는 기분 같아, 좀 알고 보면 나의 손은 꽤 예쁘고 따듯한데. 한 번만 잡아보지 그랬어. 개자식. 나쁜년. ---.


속을 꽤 비워낸 기분이다. 진득하고 검은 것들을 뱉어내는 기분이다. 오래 가슴을 색색거리게 했던 묵혀진 가래처럼.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천식처럼. 아직 편하게 숨쉬기 힘든 이유는 아직 한참 더 거멓게 남았기 때문이겠지. 러니 서둘러 더 많이 뱉어내야지.


고마워. 나쁜 말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서. 나는 이제 정말 자격이 있고, 흔들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고, 어색하게 내 것이 아닌걸 내 것처럼 말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면 부담스럽게 슬금슬금 맴돌지 않고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 이제 조금 더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고기 먹자. - 아영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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