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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얼굴이 깨끗한 반쪽이 될 때까지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 정다연

by 뎁씨


시집을 고를 때 항상 추천하는 방법은 제목만 보고 집어가거나, 펼쳤을 때 마음에 드는 단어가 생기면 집어가는 방법이다. 맞다, 또 한 줄짜리 제목에 끌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 말하는 심장이 궁금했다.


작은 시집을 천천히 넘겨갔고,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고, 그대로 붙잡고 집으로 데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이것이 시인에게서 내가 처음 본 심장의 모습이었다. 비어있는 두 페이지에 남겨진 한 줄. 이것이 그녀의 심장에 가장 가까운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첫 장부터 하나씩 하나씩 읽어가며 보이는 그녀의 심장은 상상과는 달랐다.


단속, 육식, 가죽, 해골, 짓밟힌, 벌(Punishment), 타오름, 파리, 건기, 독성, 변, 페스트, 금지, 시체, 시신, 썩음, 감염, 병폐, 악취, 죽음, 살해, 피, 오염, 이질감, 추방, 검음, 어둠, 창백, 추락, 가시, 약병, 부식, 멸종, 익사, 신음, 다락방, 불화, 무덤, 불가피, 속수무책.


이것은 내가 그녀의 시집을 읽어가며 그녀가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느껴진 단어들을 하나씩 적어나갔던 것들이다. 책의 표지는 검고 단색의 선들의 방향은 그로테스크했던 것은 그저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표현했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고르고 골라서 시로 남겼을 단어에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의 색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다만 저런 끔찍한 단어들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시에서 끔찍함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녀는 그 끔찍함 속에 잠기지 않고, 스스로 거리를 두고 심장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녀를 살게 하는 것들에 대한 희망을. 내일을. 어둡기 때문에 묻고 싶은 질문들과 그렇기 때문에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속수무책으로 우린 맺어졌으니
서로에 관해 아는 바가 없다
우리가 재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듯
페스트 中



그녀의 많은 시중에 나는 이 '속수무책'이라는 단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 내가 아닌 것들에게는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니까. 타인을 설명하는 가장 알맞은 단어를 하나 구해간다. 이런 단어 하나에 나는 시집을 고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연인의 사랑, 꿈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사랑. 사실 많은 것들에 대하여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과 가장 가까운 것을 심장이라고 말한다. 속수무책인 것들을 심장에 담아두려고 한다. 심장은 영문도 모를 수도 있을 텐데.



벽화 속 잠든 짐승들에게 붉은 물감을 칠해줍니다
살아서 이곳을 나가게 될지도 모르니까
피 흘린 동굴이 새 생명을 낳게 될지도 모르니까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겨울철 中



심장은 그저 붉게 뛰고 있으면 무언가를 살아가게 하는 기능적인 것일 뿐인데. 그래, 심장은 피를 검게 뿜어내고 있는 육덩이가 가장 본질과 닮은 것인데. 왜 나는 사랑, 마음, 행복을 생각했을까.


환상 속에 너무 살고 있지 않을까. 환상에서 벗어나는 매트릭스가 필요하다. 시집에 책에 문학에 이야기에 어디로든 삶이 갇혀선 곤란하다. 모든 것이 낭만처럼 희망처럼 와 닿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살아가는 나를, 심장을,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히 느껴가자.




내가 시를 읽는 방법을 조금 가르쳐 줄게. 이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읽는 방법을. 어려운 시집도 많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시를 네가 소화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네가 소화했던 시들이 나에게는 목구멍을 넘어가지도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지는 말자.


시집에서 한 가지 전제해야 할 것은, 시는 시인 본인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본인이 아니더라도 본인이 느꼈던 것들을 반드시 담고 있다. 단순히 이미지를 그려낸 시라도, 그것은 작가가 직접 보거나 들었다면 듣고 상상했던 것들의 풍경이다. 시인은 비겁하게 '인용'이라는 단어로 도망치지 않는다. 인용을 한다면 시인이 아니지, 연구원이 되고 평론가를 해야지.


그러니 시인 본인의 이야기라는 점을 기억하고, 이야기보다는 감정을 따라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용하는 단어들에게서 떠오르는 감정들, 나의 기억에 접근하는 단어들, 그것들로 인해 이어지고 그려지는 풍경들, 그리고 굳이 이것을 시로서 남겼어야 하는 이유를. 누구에게.


읽고 또 읽어도 이유가 느껴지지 않거나, 사연 따위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드는 것들은 그냥 지나친다. 알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니까. 그것은 본인의 탓이 아니니까. 그것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중요한 것과, 잃어버리게 되는 것들을 생각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당신이 조금 더 감각이 예민하다면 조금 더 많은 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만났던 사람의 머리카락 색은 무슨 색이었는지, 단발이었다면 어깨 위로 얼마만큼에서 멈추었는지, 장발이었다면 허리 어디쯤에서 멈추었는지. 손등에 점이 있다면 몇 개인지, 무슨 색인지, 손톱의 형태는 어떤지, 눈썹의 방향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넘어가는지, 옷은 어떤 색이었는지, 재질은 어떠했는지. 그래서 눈을 감고 그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의 감정과, 어릴 때 백화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의 감정이 어떻게 달랐는지. 직장상사의 호통 소리와 연인이 나에게 소리칠 때 느꼈던 감정이 어떻게 달랐는지. 1시간째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를 기다리는 감정과, 문자를 보냈지만 1시간째 답이 없는 그 시간에서 느낀 감정이 어떻게 달랐는지. 그것들을 당신이 조금 이해할 수 있다면.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지어낸 이야기들에 흥미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느껴지는 것들도 버거울 것이기 때문에, 감히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예민해진 감각을 되돌리는 방법은 아직 찾는 중이라서. 갖고 있으면 마음이 더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 사실은 잃고 싶은 감각이 아니기도 해서.


장르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그저 책을 읽는 것이 좋다면. 시집을 그저 감정 자기 계발서라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면 좋겠다. 다만 그것이 당신이 희망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지는 장담할 수는 없다. 아마도 희망하는 방향과는 꽤 다른 방향으로 갈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넘기고 넘기다가도 결국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 시집은 알_딘으로 팔아넘겨주거나 도서관에 기증해주는 것 정도가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시를 오래 좋아해 왔던 나를 짜릿하게 하는 문장들과 단어의 선택들은, 시를 읽어나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글을 써가면서 느껴가는 중이다. 이제니, 유이우, 이소호, 오늘의 정다연 마저도.


커피를 처음 마셔보는 당신에게 갓 뽑은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권했던 나의 배려 없는 모습에 당신은 얼마나 썼고 또 얼마나 다시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을까. 조금 연하고, 조금은 식어 따듯하다는 온도가 어울리는, 달콤한 믹스커피 같은 시집을 찾아서 조금 따듯하게 건네가야지.


생각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고, 생각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힘들겠지, 각자에게는 각자의 시인이 있을 뿐이니까.


딱히 싫어하지 않는 것을 그저 당신이 좋아한다니까, 좋아한다는 말 정도는 정말로 인사치레로 할 수 있어야지, 당신도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키스와 인사는 확실히 구분해 가면서. 그렇다고 그것에 마음을 주어서 마음이 먼저 무너지지 말아야지. 정말 좋아하는 것에게만 정말 좋아한다는 말을 건네면, 그러면 자연히 심장이 뛰어갈 테지. 그렇게 진짜 심장을 준비해야지. 당신이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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