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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suis Pierre

피에르 보나르, 인상주의

by 뎁씨


Je suis Pierre (즈 수이 삐에흐, 내 이름은 '피에르'입니다)


영어식 이름은 하나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학교 다닐 때 영어수업 시간에 하나씩 혹은 대학교 교양영어 수업 때 하나씩 지어놨을 것이다. 스스로 짓거나, 선생님이 지어주거나. 남자라면 Peter, John, David 같은, 여자라면 Mary, Jenny, Chloe 같은. 물론 나도 있다. Chris라는 이름이. 영미권에서는 '크리스'라고 무르고, 동남아나 유럽권에선 '끄리스'라고 부른다. devc (뎁씨)라는 닉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어원은 Developer, Christian (개발자, 끄리스띠앙)의 앞자를 딴 것이다. 아주 예전 개발자 계정을 등록할 때 그 앞자를 따서 아이디로 쓰고 사는 중인데 어느새 여러모로 불려서 그냥 이름처럼 쓰고 있다.


그냥 보편적인 이름으로 크리스/끄리스 를 쓰고 있지만, 프랑스나 프랑스권 국가에 가거나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다른 이름을 소개한다. 삐에흐(피에르)라고. 이 이름은 2015년 파리에 있었을 때 나에게 스스로 지어준 이름인데, 그 이유는 아래의 그림 네 '판' 때문에.



Pierre Bonnard. Woman in a Polka-Dot Dress / Sitting Woman with a Cat / Woman in a Checked Dress / Woman in a Blue Pelerine. 4판이 한 세트인 개인 소장작인데, 우연히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내가 머물고 있던 그즈음에 피에르 보나르 특별전이 열려서 우연히 들어갔다가 빠져버리게 되었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인 '모네에서 세잔까지'라는 전시를 다녀왔는데, 생각지도 않은 피에르 보나르의 작품이 두 점이나 걸려있어서 생각이 났다. 조금 멀리서 걷던 나의 눈에 단번에 나는 그것이 피에르의 그림이라고 느꼈다.


왼쪽 The Dining Room, 오른쪽 Rivage


천성이 예술을 좋아하고 우아하게 전시회를 다녔던 사람처럼 포장하고 싶은데,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원래 미술에 흥미가 없다. 음악은 1등을 해도 미술은 이게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점수인가 싶을 만큼 엄청 싫어했다는 게 정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선생님은 내가 미술에 재능이 없다 했다. 원근감이며 선이며 너무 제 멋대로라고. 어머니는 나에게 학원도 아닌 개인 미술 교습까지 시키셨다. 그래서 더 싫었다. 엄마처럼 단정한 갈색빛이 도는 펌이 아닌, 그렇다고 새까맣고 빠글한 아줌마 파마도 아닌, 으스스한 잿빛이 흐르는 파마머리를 하고 치렁치렁한 팔이 늘어지는 보랏빛 옷을 걸치고 다니는 미술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마녀 같았다.


내가 살면서 처음 '미술관'이라는 것을 가본 것은 2015년 봄, 독일 뮌헨이었다. 왜 그때 거기에 있었는지는 다른 글에서 말하게 될 것 같다. 여하튼 반년 정도 베를린이나 런던처럼 우중충한 도시에 가만히 회색처럼 주저앉을 생각이었는데, 비행기는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가 제일 코스가 적당해 보였고, 그날이 일요일이었고, 그래서 그냥 마음의 습관이니까 뮌헨의 어떤 한인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고 가라는 목사님의 말에 짧게 반찬 몇 개 얹어진 밥을 비우고 교회를 나오다가 어떤 젊은 여자를 마주쳤다. 관광 온 사람은 아니라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짙은 톤의 화장법, 구겨진 듯 한 스트라이프 셔츠, 워싱이 아닌 정말 색이 바랜듯한 청바지, 발목 끝단에 재봉되지 않고 우르르 회색빛이 도는 운동화 위로 쏟아지는 끝선. 가죽도 천도 아닌 애매모호한 재질의 검은 클러치백. 고급진 유러피언 커리어우먼이라기보다 미드를 보면 한 번씩 보일법한 동양인 유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지. 한국만 벗어나면 눈을 마주쳤을 때 인사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눈을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것이 원래 당연한 일이니까.

- 여행객이 교회도 다 오시네요?

- 네 별일 없다면요

- 하시는 일은요? 여행 계획은요?

- 오래 나온 여행이라 일은 없습니다. 그냥 걷다가 보이는 것 생각나는 것들을 가보고는 있습니다

- 일요일은 뮌헨의 미술관들 입장료가 1유로(1200원 정도)인데 가보지 않을래요?


그래서 인생 처음 가게 된 미술관은 뮌헨의 '알테/노이에 피나코텍'. 나중에 알았지, 엄청난 미술관이라는 걸. 뮌헨에 처음 내려서 숙소에 짐을 풀고 먹을 것을 찾아 마트에 가자마자 무슨 맥주가 1유로야. 물보다 진짜 맥주가 싸잖아. 앞으로 여기 있는 맥주를 종류별로 다 마셔야겠다. 그리고 더 물렁하고 시큼하게 퍼질러져야겠다. 그 생각으로 시작했던 일정이 완전히 뒤바뀔 줄 나는 몰랐지.


종합 미술관이면 보통 진부하고 틀에 박힌 사진 같은 중세시대 그림들이 맞아준다. 저런 거는 어릴 때 아버지가 좀 엄하기로 소문난 누구네 집에 가면 하나씩 걸려있는 그런 비슷한 그림이잖아. 왜 남의 사람을 그려서 집에 걸어두었담. 우리 집은 바틱 문양이나 나무 조각들, 그림이 있다면 풍경화 같은 것들이 걸려있었는데. 사진도 아닌, 게다가 남의 사람 그림을 걸어놓는 것은 항상 생소하고 또 싫었다. 지루한 시간을 걸어가면서 '빨리 다 보고 소세지나 먹으러 가야지'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어떤 방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다. 말했다시피 나는 그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할 일도 목적지도 없어서 그냥 천 원짜리 코스다 라고 생각하고 들어온 미술관에서 충격적으로 '찐' 반 고흐를 만났다.


해바라기와 오베르의 초원


지금에야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누구는 처절하게 미술 공부를 하고, 미술책에서 우와 이런 거 한 번쯤 봤으면 좋겠다..라고 꿈을 꾸는 세계가 있고, 누구는 그냥 주말에 그냥 와서 보면 찐 반 고흐, 고갱, 피카소가 그냥 천 원만 내면 볼 수 있고. 그마저도 주말이라서 전시관이 텅텅 비어있었고. 이게 국가의 힘, 문화력의 차이인가 생각이 든다.


그날 정말로 흔들리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면서, 그림이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단어에 정의가 있다면. 사진기처럼 선명하게 그릴 필요도 없고 피카소의 정신없이 기괴한 그림이나 현대미술의 '선하나 점 하나' 찍어놓고 날로 먹는 형태가 아니라 이런 흔들리는 세계를 그리는 것일거라고 생각했다. '예술'이다 라는 생각에 빠졌다. 그림을 실제로 보지 않고서 미술사 교양수업을 위해서 뒤적이던 책을 통해서 봤다면 아무런 감흥없이 평생 미술을 보지 않고 그냥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정말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오베르의 초원과, 물감의 입체감으로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생생하게 시들어가는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인상주의에 빠져버리게 된다.




과거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이제는 지금과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화가 셋을 꼽으라면 마리 로랑생, 클로드 모네, 그리고 피에르 보나르를 꼽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적당한 왜곡'을 좋아한다. 누가 보아도 선명한 그림보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서 변하는 그 형태와 적당한 왜곡이 좋다.


사실 이런 이유는 그냥 가져다 붙인 이유이고, 좋은 것에 이유를 명확히 제한적으로 붙일 수는 없다. 영문도 모르고 마주쳤는데 첫눈에 반해본 사람이 있고, 저 사람이랑 한 번만 말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꿈처럼 마주 앉게 되고, 하늘에 감사하고, 항상 보고 싶고, 만약 '내가 어디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당황한 기색도 없이 기다렸다는 듯 몇 번이고 무엇이고 대답할 수 있는, 당신의 모든 것이 이유가 되는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처럼.



밝으면서도 또렷한 색채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두운 꿈을 꾸는 것 같은 명암과 구도, 선예도. 감정을 표현하는 듯한 몸짓, 동물, 인체의 왜곡. 표정. 정말 꿈만 같다 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화가. 모네가 물을 가장 아름답게 그렸다면, 피에르는 물을 가장 꿈같이 그렸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한 번쯤 생생하게 저런 색과 풍경이 가득한 꿈을 꾸고 싶다.


어릴 때 미술을 배우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미술을 싫어해서 참 다행이다. 공부했더라면, 원래 좋아했더라면- 내가 처음 미술관을 가게 되었을 때 첫눈에 무엇에 반할지 정해져 있었을 테니까.


인상주의 그림을 보게 된다면, 나는 이것이 몇 년에 무엇이 있었고, 화법은 어떻고, 색채감은 어떻고, 그림에 얽힌 사연은 어떻고 이런 것들보다는 그림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가까이에서 선명하지 않은 붓 자국을 세밀히 보지 말고, 멀리서 희미한 인상을 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상상하는 표정과 당신이 상상하는 풍경으로 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당신 꿈에 나와서 더 흐릿하게 더 예쁜 광경을 만들어 온전히 풀어질 수 있도록.


피에르 보나르의 그림을 보면서, 따듯한 집으로 어서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간 아마 한국에도 순회전이 올 날이 있겠지. 나에게로 딱 한 번만 와 주기를.


겨울이다. 여러모로 양심 없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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