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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자A Aug 18. 2017

스타트업 개발자가 바라본 배틀그라운드

 요즘 PLAYERUNKNOWN'S BATTLEGROUNDS(이하 배그)라는 게임의 인기가 뜨겁다. 나도 주로하던 게임인 오버워치보다는 배그만 계속하고 있다. 게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이 끝나고 '한판만 더'를 외치면서 바로 다음 판을 시작하게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배그는 국내 게임 회사인 블루홀에서 만들었고 정말 세계적으로 대박이 났다. 배그를 즐겨하는 팬으로써, 그리고 같은 IT 업계의 개발자로써 느낀점을 써보려고 한다.


 우선 배그를 간단히 설명하면 100명의 플레이어들이 무인도에서 최후의 1인이 가려질때까지 다른 플레이어들을 처치하는 배틀 로얄 장르의 게임이다. 섬을 돌아다니면서 총기, 방어구, 의료 키트와 같은 아이템들을 주울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섬에서 생존할 수 있는이 영역이 좁아진다. 이걸로 모든 규칙을 설명한 매우 단순한 룰을 갖고 있는 게임이다. 그리고 32,000원이라는 가격을 주고 사야하는 유료 게임이다. 게임을 구매한 뒤에 피씨방에서 직접 설치를 해야만 플레이할 수 있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벌써 피씨방 게임 순위 3위까지 올라왔다. 한국에서는 게임을 구매하지 않고 대부분 피씨방에서 무료로 플레이하는게 일반적인 문화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짧은 시간만에 엄청난 성공신화를 써내려가고있는 게임지만 의외로 배그의 완성도는 유명세에 비하여 매우 낮은 편이다. 게임의 최적화 상태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그래픽이 별로 좋지 않은 게임에도 불구하고 꽤 높은 사양의 그래픽카드, RAM, CPU를 필요로 한다. 오죽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래픽 옵션을 가장 낮음으로 설정해놓고 플레이한다. 그리고 클라이언트/서버 모두 버그가 많다. 맵에 끼거나 캐릭터나 비정상적으로 날라가는 현상은 빈번하게 발생하며 서버가 다운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UX도 상당히 불편한편이며 킬캠(상대가 나를 어떻게 죽였는지 보여주는 카메라)과 같은 게임 편의기능도 거의 없다. 출시 직후에 비하면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이 외에도 하나하나 따져볼수록 여러 부분에서 성공하기 힘들 것 같은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는 이 게임은 왜 잘 되고 있으며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 내서 ‘갓겜'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을까? 


 우선 개발 프로세스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배그는 린 스타트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제대로 반영하여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린 스타트업 프로세스에선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차별성과 최소한의 기능만을 담고 있는 MVP(최소 기능 제품)를 만들어서 빠른 출시를 하고, 사용자의 피드백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받아서 적용해나가 발전시킨다. 그로 인해 불필요한 사전 조사 등 시간 낭비를 최소화한다.


 우선 블루홀은 제대로 된 MVP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좋은 그래픽, 버그나 렉이 없는 안정성, 편의 기능 등 모두 좋은 제품을 위한 요소들이지만 배그가 다른 게임과 차별점을 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것들이 아니라 게임 장르와 현실성이기 때문이다. 배그 전까지 같은 장르에서 독점을 하고 있던 H1Z1라는 게임을 손쉽게 이겨버린 이유는 현실성을 높혀주는 게임 내 요소들(다양한 총기, 탈것, 탄속, 영점 조절 등)이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혀주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배그라는 제품의 차별성을 만들었고 다른 불편한 부분들을 모두 감수하면서도 사용자들이 돈을 지불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차별성있는 제품을 내놓는데만 그치지 않고 피드백을 많이 받고, 빨리 적용한다. 예를들면 트위치 방송에서 한 스트리머가 방송중에 이번 패치에 버그를 발견하자, 그 방송을 모니터링을 하고있던 블루홀 직원이 채팅으로 확인해보겠다고 하고 해당 현상은 버그가 맞으니 바로 고치겠다고 피드백을 준다. 직원들이 이렇게 방송을 보면서 모니터링한다는 것도 놀랍고, 바로 채팅방에 대화를 하며 응답을 주는 것도 놀랍다. 실제로 처음 출시일인 2017년 3월 말 이후 약 4~5개월 동안 많은 기능들이 추가되었으며 최적화 및 버그 픽스 등도 많이 이루어졌다.


 추가적으로 "게임 = 마케팅"이라는 현재 한국 게임 시장의 공식과 완전 다르게 마케팅에 비용을 거의 쓰지 않았다. 최초 출시 때 유명 게임 스트리머들에게 이용권을 뿌려 방송을 통한 입소문만으로 현재 판매량 700만장을 돌파했다.  또한 이 게임을 만들때 배틀로얄 장르의 창시자인 브랜든 그린을 디렉터로 모셔오기도 하고 개발자들도 국내에서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개발자들을 뽑아 리모트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잘나가고 있는 게임이지만 조금 다른 관점인 배그 개발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하루하루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 같다. 아마 이 게임을 만들 때 모두들 "기능 구현 위주로 해서 빨리 만들고 검증해보자"라는 마인드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코드의 구조가 지금 플레이어 수나 개발 속도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코드를 속속들이 알고있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많이 당황스럽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트래픽을 담당하려고 만든 코드가 아니고 이런 기능들을 고려한 코드가 아닌데, 계속 기능이 올라가고 오류 로그와 버그 리포팅이 쌓이는 모습을 보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 같다. 당장 더 이상의 개발을 멈추고 처음 설계부터 바꾸고 싶지만, 그러자니 이미 대기중인 다음 기능들이 너무 많을 테고.


 최적화 패치도 주기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발을 직접하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제품에 기능 추가, 최적화라는 작업은 기존 기능에는 작은 영향만 있고 새로운 코드만 올려놓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최적화란 겉모습은 같으나 대부분의 경우 내부 구조를 크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기존의 코드를 재작성하게 된다. 효과가 더 큰 최적화일수록 많은 양의 코드를 재작성하고 많은 부분에 side-effect를 미치는 경우가 많다. 고친 부분은 많지만 시간이나 인력의 한계로 많은 테스트나 검증을 하지 못하고 배포를 할 것 같은데 개발자들이나 QA분들은 매 배포때마다 어떤 장애나 버그가 터질지 몰라 많은 압박을 받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고 지금 새로운 인력을 바로 투입하기에는 기존 시스템을 설명해주고 인계 해줄 시간이 필요한데, 이미 기존 개발자들은 버그를 잡고 기능들을 개발하느라 바쁠 것 같다. 그리고 서둘러서 만드느라 가독성이 좋은 코드도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개발자 분들의 스트레스를 걱정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그분들이 정말 부럽고 지금이 커리어 중 가장 행복한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생하는건 망한 제품이나 성공한 제품이나 같은데, 이 분들은 사랑받는 성공한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금전적으로도 충분한 보상도 받게 될테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갖고 칭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트위터도 초기에 예상치 못하게 대박이 난 것에 대하여 '로켓을 발사 시키려고 준비하는 도중에 갑자기 이륙하여 손톱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라고 표현했었는데 그와 비슷한 기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블루홀이 스타는업 회사는 아니지만 역시 스타트업은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것을 또 다시 생각하게되었다. 스타트업은 이처럼 제품의 성장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배우면서 이 속도를 유지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를 내기도 힘들뿐더러 억지로 속도를 내려고 했다간 제품이 고꾸라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그하고 오늘 저녁은 치킨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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