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는 몰두하고 싶은 감정이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동네 근처 카페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앉아 각자의 작업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나는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며 푸른 하늘을, 그리고 내리쪼이는 햇살을 바라본다. 밖은 다소 덥지만 여기는 시원하다. 나는 안락함을 느끼며 유리벽 너머의 햇살이 주는 아름다움만을 취한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이는 맑은 날은 아름답다. 특히 한 여름의 햇살은 그 강렬한 만큼이나 더욱 아름답다. 다만 행복의 한 가운데에서는 그것의 비극을 볼 수 없고 비극 가운데서는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뜨거운 햇살 속에서는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법이다. 하지만 간신히 그늘을 찾아 그 햇살로부터 벗어나거나, 이렇게 카페안에서 유리벽으로 뜨거움과 유리되어 있을 때에는 비로소 그것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회상하고 그토록 그리워 하는 것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자. 그 때, 그 속에서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단면들이 지금에야 의미 있고 지금에 와서 다르게 와 닿는 이유는, 우리가 모든 사건의 경험들을 회고함으로서 완성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살면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니까.
사실 내 생각과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월요일 북클럽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돌아오는 길에서야 대화들을 회고하며 내 생각이 완성된다. 여행을 가고 산을 오를 때면 매번 얼마 지나지 않아 헐떡이며 후회를 하지만 그 모든 일이 지난뒤, 바쁜 일상을 지내다 문득 오늘처럼 여유로워지면 그들의 의미가 연결되고 이야기가 발견된다. 내가 가진 많은 이야기들이 이런식으로 구성되다보니 이제는 고생길이라 하면 그 끝에 존재할 어떤 이야기에 대한 설레임으로 그 길을 선택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무리 좋은 경험이고 그것이 대단한 쾌락을 준대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은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글을 쓰거나 에너지를 쏟아 무언가를 완성하려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그토록 질긴 시간과 그 시간을 채울 이야기에 대한 갈망뿐이니까. 자연은 그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사람을 길들여 왔던가 보다.
문득 찾아온 오늘의 여유속에서 그때 나는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또 얼마나 불안하고 이기적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휩쓸고간 지금의 고요함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또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