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차를 처분했다. 다시 뚜벅이로의 복귀다. 애초에 나는 차를 살 생각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차가 꼭 필요하지 않기도 하고 필요할 땐 카쉐어링 등의 다른 옵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을 태울 일이 생겨 차가 필요해졌고 결정 3일 만에 중고차를 들였다. 초기의 구입 이유는 이내 유효하지 않아졌지만 한 번 시작한 차량 소유는 18개월 간 유지되었다.
생전 처음 차를 소유한 경험이 얼마간 즐겁기도 했었노라고 고백한다. 말끔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의 즐거움도 조금있었겠지만 그보다 아침 일찍 올림픽대로를 직접 운전해 달리는 기분의 경험이 더 강렬했다. 사회에서 어른으로 간주하는 한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에서 문득 세상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실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자동차가 개인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맥락에서 스며든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경험도, 사회적 지위에 대한 싸구려 상상도, 내가 마주한 급변하는 세상 앞에 오래가지는 않았다.
근래에 나는 조급함이 있었다. 비록 우리나라는 요지부동이지만 세계는 탈화석연료시대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고, 전기차의 보급은 얼리어댑터의 단계를 넘어서려는 것 같았다. 평소에 친환경에 관심이 많은 나는 주유소에서 셀프로 휘발유를 주유하면서 내가 태운 수십 리터의 공백을 마주할 때마다 작은 죄책감들이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결정적으로는 작년부터 기후위기에 더욱 경각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차량 소유가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음을 넘어서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라는 계산이 섰다. 세계 각국에서는 탄소배출 저감 목표에 맞춰 관련 법 개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내연기관 차량은 수 년 내에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에따라 내연기관 차량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이고 이런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전에 내 차를 처분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더불어, 나의 얼리어답터적인 기질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기술에 크게 이끌리는 편이고 전기차가 보여주는 신기술의 새로움에 매료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기차는 어느새 기술이 훌쩍 발전해서 일상의 자동차를 대체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10년 안에 우리가 새로 구입하는 차의 대부분은 전기차일 것이다. 그에 반해 내가 타는 내연기관 차량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의 대두와 더불어 탈수록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이런 차를 처분하는 대신 전기차를 들여 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은 차가 없는 홀가분함을 만끽하기로 한다. 덕분에 친환경을 말하면서 새로운 소비를 하는 것의 부조리도 피할 수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내가 집이나 차를 소유하기 꺼리는 이유중 하나는 어딘가에 얽매이는 느낌 때문이다. 집을 구입하면 그 지역을 쉽게 떠날 수 없다. 집값과 정책의 변동에 민감해지고 신경쓸게 많아진다. 언제든 원하기만 한다면 새로운 장소에 살고 싶은 나는 그런 닻을 내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차량도 집과 비슷하다. 많은 소유에는 숨겨진 비용이 있기 마련이다. 차량 소유에는 단순히 금전적인 유지비용 외에도 정기적으로 세차하고 점검받고 관리하는데 쓰는 시간의 비용, 주차 문제로 신경쓰거나, 엔진룸의 작은 소음에 무언가 고장난건 아닌지 마음 졸이거나, 때론 내차에 문콕을 한 상대에 대한 마음 쓰임의 비용도 있다. (마음쓰임은 어쩌면 가장 큰 비용이다.) 이 모두가 차를 살때는 미처 고려하지 않는 추가적인 비용이다. 요즘 나는 나들이에는 주로 자전거와 기차를 타고 꼭 필요할 땐 카쉐어링으로 전기차를 빌려탄다. 더이상 차량 소유에 대한 환상이 없고 차량소유의 숨겨진 비용도 경험한 나는 이게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차가 없으면 더 번거로운건 사실이다. 조금더 시간을 써야 하고 조금더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건강을 위해서라도 시간 내어 운동하는 대신 시간 내어 이동하면 어떨까? 사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걷고 화석연료는 더 멀리해야 한다. 차량을 구입하고 에너지를 사용해서 절약한 시간 만큼 줄어든 우리 신체 활동을 만회할 고민도 필요하다. 세계인이 절약한 시간 만큼이나 기후는 급변하고 있고 우리에게 변화하라고 압박해온다. 동시에 우리 신체는 달라진 생활양식에 적응하지 못한채 만성적인 운동부족에 시달린다. 그리곤 다시 운동을 위해 헬스클럽에 비용을 들이고 시간을 소비한다. 이것은 무슨 비효율이란 말인가? 차를 소유하는 대신 좀 더 신체를 사용하는 건 기후도 지키고 내 건강도 지키는 좋은 전략이다.
누구도 노동을 절약해 주는 기기를 사면서 “내가 아낀 이 운동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은 우리를 구원하는가, 바이바 크레건 리드 (원문:Why exercise alone won’t save us)>
물론 차가 필요한 생활 환경을 가진 사람도 있다. 무조건 흑 아니면 백을 이야기 할 생각은 없다. 또한 삶에서 자기 차를 한 번쯤 소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소유욕을 무작정 억제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렇게 소유한 차가 낡아보이고 새로운 차에 눈이 돌아가는 때가 온다면 새로운 구입 대신 다른 방법에도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거기엔 새 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새로운 경험과 가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