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반란한국
2020년 11월 19일 아침 8시 30분. 나는 국회 정문에 자전거 자물쇠로 스스로의 목을 달아 잠궜다. 나는 전날 밤새 오늘 액션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느라 잠을 설쳤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상상했던 대부분의 불운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무리없이 국회 정문에 내 목을 묶을 수 있었다. 문 앞을 방해하는 차량도 없었고, 무얼하느냐고 묻는 경찰도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나는 동료들과 신호를 주고 받은 뒤, 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차분히 시간을 갖고 목을 매었다.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넘기기까지 시간은 채 1분이 흐르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내린 11월의 이례적인 폭우는 그제야 조금 가늘어진 채 우리의 우비를 적시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빗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모두가 계획대로 문 앞에 목을 잠궜음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주변에 서있던 경찰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미리 불러둔 언론사 카메라는 우리 앞에 배치되었다. 정문을 통과하는 차량들은 조금은 두리번 거리며 여전히 우리 옆에 열린 문을 통해 지나갔다.
"기후위기 직시하라", 잠시 후 우리는 피켓을 손에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 날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에 관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있는 날이었다. 얼마전 2050년 탄소중립을 발표했던 대통령의 목표에 걸맞는 2030년 배출 감축 계획도 발표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닿지도 않을 것 같은 2050년을 말하는게 터무니 없었다. 정부와 기업, 모두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다. 변한건 하나도 없었다.
경찰들이 몰려들었다. 버스에서 내린 경찰 수 십명이 우리를 둘러쌌다. 고작 스스로의 몸을 묶은채 가만히 서있는 우리 몇 명 때문에 경찰 수십명이 몰려와야 하는가 싶어 살짝 헛웃음이 나왔다. 경찰은 교통을 차단하고 우리를 둘러싼채 확성기로 잘 들리지 않는 말을 소리쳤다. 이내, 경찰들은 자물쇠를 부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미리 준비한 성명문이 낭독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7년도 되지 않는다. 운좋게 중위도 지역에 태어나 지금과 같은 사계절을 누리고 일상 생활에서 큰 생명의 위협없이 생활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적당한 사치도 부릴 수 있던, 지난 20세기부터 이어져 온 현대인의 삶은 사실상 끝났으며, 최소한 우리의 생명과 안전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지금 당장 급진적으로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왜냐하면 이 시간 이후에는 지구가 스스로 회복 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나 우리가 아무런 배출을 하지 않아도 지구 스스로 더 뜨거워지는 상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자는 이걸 50%이니 66%이니 하는 확률로 따지지만, 나는 안전을 위해선 50%의 위험한 확률만 있어도 100%와 동일하게 간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호주와 캘리포니아의 산불이나, 지금과 같은 아마존 파괴는 계산에 포함되지도 않았으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예상하는 것보다 더 적다.
그런 사태의 시급성과 절박함을 길거리에 피켓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방법으론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걸 지난 30년간의 기후 캠페인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물쇠로 목을 매기로 했다. 우리의 생명이 위급함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다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경찰들이 보는 옆에서 법을 어긴다는게 주는 심리적인 저항감도 컸지만, 이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방법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우리가 유독 유난스러운 사람들인 것일까. 우리는 어제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조용히 시스템 안에서 순종적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난 10년간 평범하게 일해온 노동자였을 뿐이다. 그러나 엄연히 과학이 증명해낸 기후위기의 실체와 시급성을 알고서는 더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다. 우리 개개인은 개인으로서 감내해야했던 그 실체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꿈꾸던 미래의 삶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좌절해야 했다. 우리는 그저 10년, 30년 후에도 안전하게 살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명문 낭독이 끝나고 모두의 자물쇠는 하나씩 잘렸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으며 나는 경찰 버스로 연행되었다. 처음 겪는 낮선 상황에서 혹시나 실수할까 입을 다물고 협조적으로 응했다. 그러나 기분은 예상보다 괜찮았다. 거친 언행도 없었고, 몸이 거칠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두려워했던 일이 어떤 경험인지 알게되는 게 신기했다. 내가 법을 어기고, 감히 상상해 본적 없는 체포와 연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어떠한 것인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그날 하루를 경찰서에서 그렇게 온건한 분위기 속에 지냈다. 그리고 구속없이 경찰서를 나왔다.
기차에서 내렸다. 아내가 마중나와 있었다. 집을 나설때 했던 생각이 나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런 험난한 하루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이런 평온한 일상이 내게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자 내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지 명확히 바라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