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벵
금기는 꼭 깨어야 하는 존재인가? 그냥 처음 상태 그대로, 신비로운 모습으로 두면 안되는 걸까? 이것이 우리가 더 이상 배우기를 포기하고 무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금기임을, 그리고 껍데기임을 인식하는데서 멈추면 안되느냐는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금기는 깨더라도 어떤 금기는 깨지 않고 남겨두면 안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모든 신비로움을 정복하고 더 이상 찾아볼 신비로움이 없는 상태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것일까?
나는 문득 여기서 현대사회를 이끄는 끝없는 경제 성장의 프레임을 떠올린다. 회사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면 주가, 즉 그 회사의 미래 가치는 떨어진다. 단지 지금의 수익을 유지하는 것 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이미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음에도. 그래서 회사는 끊임없이 사업을 확장하고 대기업들은 모든 분야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은 무한한 배움과 성장에 대한 예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끝없는 배움만 있다면 누구나 청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끝없이, 그래서 죽음이 내일이라도 끝없이 성장하는 것만이 옳은 것인가? 우리가 말하는 그 성장이란 것들은 가령,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드는 것을 극복하는 것들일텐데, 과연 그것이 긍정적인 것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았을때 그 동안 꽤나 신념과 금기들을 깨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내가 느끼게 된 것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었다.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말할 수 없었다. 금기는 끝없이 깨어져 나갔지만 결국 그 끝에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만 있었을 뿐이다.
최근에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다. 손에 꼽을만한 많은 대사들이 있었겠지만 내게 유일하게 남은 대사는 'You need me' 였다. 무엇이 나를 저사람이 아니면 안되게 하는 걸까. 그 제약조건을 깨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자라오면서 많은 금기들을 주입받는다.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하면 나빠. 어느 때에 이르면 그 금기들을 스스로 깨는 시점이 오는데,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지속하도록 장려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는 나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싶다. 그 금기를 사회가 부여했으니 깨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금기는 아름다우므로 지키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내가 집착하는 금기가 혹은 신념이 단지 어떤 관념일 뿐임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머리로 이해했다고 그 관념을 깨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