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먼드에서의 4월 어느 날, 그녀의 정원이 생각난다.
순간이나마 나는 자연과 하나 된 것처럼,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에 조용히 귀 기울였다. 애초에 리치먼드를 찾아온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하찮은 것에서 발견하는 신선함으로 족쇄처럼 조여 오는 그 궁금증의 갈증은 특정한 공간과 공기 같은 가벼움에 자리를 내주었다.
근처 리치먼드[Richmond]라는 곳에서 하루를 보낼 마음으로 나서는 토요일 아침, 혼자 나서는 나의 모습이 친구의 큰 걱정거리였는지, 차표 사는 일부터 음료와 샌드위치를 챙겨 나의 가방에 질러 넣어준다.
- 오늘은 어디로 가?
- 리치먼드.
- 찾아갈 수 있어? 그곳엔 뭐가 있는데?
- 물론. 너와 학교 가면서 여러 번 지나가던 곳이잖아. 운 좋으면 18세기의 역사를 볼 수 있겠지.
지난 일주일간 아침마다 버스 안에서만 스쳐봐야 했던 작은 마을을 마음에 적어두며, 정말로 '이곳에 그곳이 존재할까?'라는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 볕 좋은 토요일에 리치먼드로 발길을 돌린다. 일링 브로드웨이[Ealing Broadway]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한 지 40여분이 지났을 무렵 눈에 익은 한적한 도심에 버스가 정차했다.
막상 버스에서 내리고 나니 동서남북 어디부터 발을 내디뎌야 할지 난감했다. 이른 아침이라 유난히 동네는 한적하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예배당의 종소리와 간간히 오가는 자동차 소리뿐. 우선 이 한적함을 깨는 자동차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좁은 골목으로 향했다. 런던의 어느 비좁은 골목과는 사뭇 다른 한적함에 그곳에 스르르 녹아버리는 착각에 잠시 빠져버렸다.
사람도 차도 그 무엇도 없고, 오로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가지런히 정돈된 집들과 화창한 하늘뿐이었다. 그제야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그곳엔 뭐가 있는데?'
그래, 이곳에 그저 한적함만이 있을 뿐이다.
강줄기를 따라 강물이 흐르듯이 나 또한 그냥 놓인 길을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이곳에서 궁금증의 해답이 있을 터는 만무했다. 지도상에도 나오지 않은 곳인데 무작정 운을 믿고 찾아왔으니,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 정상적 이리라...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집들도 마찬가지로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여쯤 걸었을까, 담벼락 앞에 놓인 벤치에 잠시 앉아 물을 마시며 손에 들고 있던 지도를 이내 접어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다시는 보지 않을 심상으로. 이곳처럼 정갈하게 정돈된 곳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찾고, 목적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지도에 없는 곳을 찾는 거야?
벤치 뒤의 나무문이 열리더니 한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죄송해요. 주인 없는 자리로만 생각했어요.
- 주인 없는 것은 없지. 앉으면 주인이고, 필요하면 주인이 되는 것이지.
주운 사람이 임자다라는 것일까?
- 어디서 왔어?
- 한국이요.
- 오~ 전에 우리 집에 머물던 리치먼드 대학생이 한국 학생이었어. 어디를 찾는데?
- 치스윅 하우스예요. 그런데 지도에는 도무지 안 보여서. 지도도 안 보이는 곳에 두려고요.
- 음... 그럼 너무 멀리 왔어.
-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리치먼드가 좋아졌어요.
- 그러면 너만 괜찮다면 내 정원 구경하지 않을래? 차도 한잔 마시고...
선뜻 승낙하지 않은 나의 마음을 훔쳐봤는지, 그녀는 괜찮다는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지, 그네들의 친절이 어떤 때에는 공포스럽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녀가 혼자 살고 있는 반쯤 정신 나간 노인네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내 안의 반쪽 천사가 그녀를 따라가도 좋다고 등을 떠밀었는지 모르지만, 조심스레 그녀를 따라 비밀스러운 그녀만의 정원으로 들어갔다.
집 앞 작은 정원이지만 그곳은 아마도 그녀만의 '비밀의 화원'이리라... 작은 오솔길과 연못,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마치 동화에 나오는 듯한 숲길을 축소한 것일까? 금세 작은 토끼 한 마리가 뛰어나올 것 같았다. 연못에는 작은 금붕어도 몇 마리 보였다. 연못 주변에는 갖가지 이름 모를 꽃과 화초들, 키 작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 서 있었고, 어린 이파리들의 초록은 같은 초록이 없이, 그 자체만으로 신비로운 시각적 효과를 자아냈다.
아마도 이 어린 이파리들은 여름이 되면 진초록 잎으로 흰색 담벼락에 그늘을 드리울 것이며, 그 밑 잔디밭에는 갖가지 향기로운 꽃잎들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집 한쪽 벽은 담쟁이넝쿨이 줄기를 뻗어 지붕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담쟁이가 지나가는 창문엔 금빛 수술이 달린 계란 색 커튼이 쳐져 있었다.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할멈이 과자로 만든 집으로 데려온 듯한 약간의 못된 생각도 들었다가, 이상한 나라 엘리스의 흰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과자처럼 부서지지 않을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이 모든 것이 하품을 하며, 자신들의 단잠을 깨운 것에 짜증을 내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 또한 자신의 정원에 깊은 애착과 함께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정원을 자랑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생기 발랄한지, 저 나이에 저러기도 쉽지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봄에는 화사한 수선화가 정원을 수놓고, 여름이면 탐스러운 장미가 가득한 정원,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따사로운 4월의 햇살에 살포시 고개를 내민 어린 이파리들은 그녀가 곁에 가자, 마치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 마냥, 살랑살랑 흔들렸다. 가벼운 바람이 일자 꽃에서 희미한 향기가 풍겨왔고, 크고 작은 잎들이 하늘하늘 일렁거렸다. 순간이나마 나는 자연과 하나 된 것처럼 날것에서 나오는 생명력에 조용히 귀 기울였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찻잔에 차를 내 왔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은은한 허브 향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서 그날 오전은 그녀와 함께 그녀의 정원일을 돕기로 했다. 애초에 리치먼드를 찾아온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하찮은 것에서 발견하는 신선함으로, 족쇄처럼 조여 오는 그 궁금증의 갈증은 특정한 공간과 공기 같은 가벼움에 자리를 내주었다.
어느 날 훌쩍 자란 화초의 볼품없는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그들도 관심이란 것을 알며,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베란다의 한쪽 켠에 즐비하게 줄지어선 화분대에 무심코 물을 주며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아파트 단지 안 작은 화단이나 공원, 건너편에 보이는 낮은 야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푸르름을 자랑하며 초여름 생기 넘치는 햇살을 발하고 있는 갖가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가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으로 온 세상이 피에 톤의 마차처럼 타 들어갈 때나, 대기의 열기를 식혀줄 한여름 소나기가 쏟아질 때, 나는 베란다의 화초들보다는 창 밖 너머 그 푸르른 나무들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여 보았다.
'하늘의 고마움을 나의 화초들도 느낄 수 있겠지?'
그리고는 이내 나는 약간의 부지런을 피웠다. 물을 주는 부지런, 화초의 이파리를 닦아주는 부지런, 시들어 버린 이파리를 정리해 주는 부지런, 화분의 먼지를 털어주는 부지런, 혹 여나 벌레라도 생길까 살충제를 뿌려주는 부지런. 이렇게 부지런을 떤 까닭에서 인지 나의 화초들에도 창 밖 너머 그들만큼이나 생기를 띤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도 그 햇살이 느껴지는 듯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이런 부지런을 떨게 된다. 청순한 아름다움의 카라도 화려한 장미도 있는 그대로가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정성을 들이는 것에 따라 이파리의 윤기나 줄기의 미끈함을 느낄 때의 뿌듯함이란... 늘 그대로이고 늘 한결같아 좋아 보이는 것. 그들도 자신에게 사랑과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알아채고, 가까이 오면 그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발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런 생활의 부지런으로 요즘 나는 플라시보 효과를 만끽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슨 조화인지 삶의 편린 같은 근심들이 어디론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동물보다 식물이 좋아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일까?
리치먼드에서의 4월 어느 날 그녀의 정원이 생각난다. 기억 속에 자리한 평범한 그녀의 모습이 숭고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