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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vil Aug 27. 2022

16#바르셀로나 : 자연친화적인 카탈루냐 요리

시각적 향연


그날 저녁, 딱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중간 어디쯤에 보이던 레스토랑의 창가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나의 후각과 미각은 그렇게 시각에게 저만치 뒤처져 있어, 아무리 어떤 맛을 보았는지, 그 향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보케리아의 컬러들뿐이다. 누가 그랬던가? 지중해의 빛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빛이라고... 이 지중해의 적당한 빛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형체와 색채를 최적의 상태로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으로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대도시에서의 회색빛 일상보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자연 그대로를 바로 보려고 하는 것. 바르셀로나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에는 이처럼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바르셀로나의 일상이 지중해의 색채 속에 그려있다. 이렇듯 일상적인 사물에 숨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케리아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역사와 삶과 미래가 움직이는 방식이리라.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 입구


햇빛이 대기 중에 가득 찬 입자들에 닿아 파랑과 보라색이 사방으로 흩어져, 우리들의 눈에 하늘이 가장 파랗게 보이는 시간. 태양이 지구와 점점 멀어지며, 오직 붉은색만이 그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여 우리의 눈에 와닿는 시간. 하루 중 그 시간은, 손에 닿을 것만 같이 투명하면서도 진한 파란색 하늘에, 서쪽으로 약간 기운 태양으로 인해 보일 듯 말듯한 붉은 베일이 덮혀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4차원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동쪽으로 길게 뻗은 그림자도 이때만큼은 살아 있듯 일렁거린다.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을 이고 있던 자작나무는 시원한 그늘 대신, 제키보다도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나뭇가지와 초록 잎사귀 사이사이에는 서로 연결되지 않고 겹쳐지지 않은 노랑, 주황, 분홍, 초록색이 각각의 몫을 잃지 않으면서도 파란색 하늘 아래에서 흩어지다가 모아지기를 반복한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태양으로부터 똑바로 뻗어 나오는 노란색과 주황색에 의해 반짝거림이 없이 반짝인다. 이것이 지중해에 맞닿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빛이다. 그 빛에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지중해의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함께한다.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에서 나서는 시간이 그러했다. 


지중해를 향해 여전히 위엄을 떨치고 있는 콜럼버스 동상에서 람블라[Rambla] 거리를 따라 카탈루냐 광장[Placa de Catalunya] 방면으로 10여분을 천천히 걸어 왼쪽 어디쯤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면,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깃발 모양의 심벌 아래 "마켓 산 호셉 라 보케리아 (MERCAT St JOSEP LA BOQUERIA)"라는 문구가 노랑과 주황의 유리로 장식된 현대식 아치 아래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스페인 전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수축산물 시장으로, 딱히 장을 봐야 하는 현지인이 아니더라도,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 한 번쯤은 들러야 하는 곳으로 그 명성을 자랑하는 "보케리아 시장 (MERCAT St JOSEP LA BOQUERIA)"이다. 서유럽인, 북유럽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동양인들이 고객과 관광객으로 뒤섞인, 그래서 하루 방문자만도 30만 명이 넘어서는 보케리아 시장은, 스페인 전역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소비상품의 최종 판매처로, 서유럽에서는 위상이 높은 특화된 농수축산물 시장이다. 또한, 스페인 경제의 중심지이며, 문화와 예술의 도시 바르셀로나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의 일상생활과 음식문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보케리아 시장의 원래 명칭은 "산 호셉 시장(MERCAT St JOSEP)"으로 보케리아 시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원래 보케리아 시장은 12세기 때 바르셀로나로 들어오는 몇 개의 문 가운데 하나였던 프라 데 라 보케리아(Pla de la Boqueria)에서 농부와 축산업자들이 직접 농사한 채소와 도축된 육류들을 가져와 팔면서 시작된 곳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도시를 둘러싼 성벽 성문 앞에서 종종 상인들이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 보케리아 시장도 그렇게 시작된 곳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들어와 바르셀로나 시가지의 규모가 점점 확장되어 출입문이 사라져 버리자, 람블라 거리 중심에 있는 산 호셉 수도원에 딸린 밭에서 시장이 서게 되었다. 그 후 19세기에 수도원이 사라지면서 시장이 만들어졌고 이름도 „산 호셉 보케리아 시장(MERCAT St JOSEP LA BOQUERIA)“이 된 것이다.


높은 열주들이 늘어선 가운데 발길을 사로잡는 즐비한 노천카페들을 지나면, 세상의 모든 색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다채로운 컬러의 향연이 시작된다. 빨강, 노랑, 주황, 초록의 원색들로 무장한 그 수만큼 다양한 과일들과 채소들이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사로잡고도 남을 형형색색의 과자와 초콜릿들, 평소에는 그 까슬까슬한 식감의 여운이 오래도록 입안에서 남아 절대 쳐다도 보지 않은 무수한 견과류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고 있다. 자연의 색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고자 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빛이 이 보케리아 시장에서만큼은 무미건조하고 불완전한 색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각적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가득했다. 거기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올리브와 오렌지, 각종 허브 등을 판매하는 가게가 줄지어 있고, 빨간색, 흰색, 노랑, 초록, 보라, 분홍, 파랑 등..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원색 컬러로도 표현이 모자랄 만큼의 다양한 젤리 과자와 막대사탕들을 파는 가게들도 있다. 특히나 엔리크 베르나(Enric Bernat)라는 바르셀로나 기업가가 1958년에 처음 생산한 츄팝춥스가, 살라도르 달리가 디자인한 로고를 그대로 품으며 지나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발길을 잡는다. 



세상의 모든 컬러를 한데 모아놓은 곳은 비단 과일과 채소, 젤리 등을 판매하는 곳만이 아니다. 요란스러운 빨강, 노랑, 주황, 초록, 파랑, 보라의 끝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시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온통 붉은빛으로 수놓은 정육점들이 줄지어 있다. 암적색의 훈제고기나, 분홍빛이 감도는 붉은색의 베이컨, 연한 살색에서부터 살구색에 이르는 오동통한 소시지 등이 유리 진열장이며, 천정에 가지런히 줄 맞추어 있었고, 거기에 동양인으로는 생에 단 한번 볼까 싶은 이름 모를 치즈들도 재각각의 색을 자랑하고 있다. 

해산물 또한 스페인에서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지중해가 선사하는 축복을 이 보케리아 시장에서 볼 수 있다. 그것도 다채로운 컬러로 둔갑한 여러 해산물들을... 인간의 눈이 파란색 빛에 가장 민감하다고 했던가? 하지만 보케리아 시장에서만큼은 파란색을 감지하는 추상체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시신경 저 깊숙이 잠들어 버린 듯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그 두 색의 중간 어디쯤 있는 주황색과, 초록색으로 가득하다. 암갈색과 선홍빛의 바닷가재나 새우, 짙은 적갈색의 해삼이나, 주황빛 그 자체의 멍게 등, 지중해에서 갓 들여온 온갖 해산물들 사이에 드문 드문 반으로 쪼개진 향긋한 초록의 라임들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면, 가던 발걸음도 멈추게 된다. 이곳보다 더 특별하고 기이하며, 고귀하고 맛깔스러우며, 흥미롭고 탐나는 색채로 가득한 곳이 있을까?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다. 색이 곧 언어이며, 색으로서 시간이 움직이는 곳이다. 





이렇게 다양한 식재료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스페인은 지방마다 아주 다양한 요리가 발달되어 있는데, 특히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요리는, 주로 내리쬐는 태양 아래 지중해 기후가 만들어낸,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농산물과 축산물, 수산물을 이용하여, 자연적 특성과 종교적 관습을 더하여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먹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페인인들은 식재료에 있어서도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스페인의 강렬한 햇빛을 고스란히 닮은 토마토라던가, 청명한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누르스름한 구릉지대에서 자란 올리브와 포도나, 카탈루냐 기를 연상케 하는 나랑하 [Naranja]로 불리던 오랜지는 모든 요리에 사용할 만큼 스페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카탈루냐 요리는 또한 매우 지중해적이다. 음식들은 자연적인 재료로 매우 정성스럽게 만들어지며 건강에도 매우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이 있다. 하루에 5식의 식사문화를 가진 스페인이지만, 소박하면서도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아, 건강하면서도 풍성한 식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스페인 사람들이다. 물론 짜거나 자극적인 요리들도 꽤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적 음식은 지중애 기후에서 얻어지는 건강하고 자연적인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요리가 많다. 




- 에스칼리바다 [Escalivada]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적인 샐러드. 가지, 붉은 피망, 토마토, 양파 같은 구운 야채로 만든 샐러드이다. 야채 껍질을 벗긴 뒤 잘라서 씨를 제거, 잘 구운 뒤 올리브 오일과 소금을 넣으며, 가끔은 마늘을 넣기도 한다. 에스칼리바다라는 이름은 "잿더미에서 요리하다"라는 뜻을 가진 "escalivar"라는 카탈루냐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전통적인 요리 방식이 장작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 빠에야 [Paella]

쌀을 생산하는 발렌시아 지방에서 처음 나온 빠에야. 빠에야(Paella)라는 이름은 이 요리를 위한 특별한 냄비에서 유래되었다. 흰 살 생선과 새우, 문어, 조개 등을 야채, 콩, 토마토, 마늘, 고추와 섞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샤프란으로 색을 더한 쌀 요리로, 스페인 사람들 모두 즐겨먹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요리이다. 파에야 데 마리스코(Paella de marisco)와 야채 빠에야(Paella)가 있는데, 파에야 데 마리스코(Paella de marisco)는 새우, 가재, 홍합, 오징어를 비롯한 해산물에 피망과 파프리카, 양파 등을 넣어 조리된 것이고, 야채 빠에야(Paella)는 각종 야채로 조리되는 것이다.


- 따빠스 [Tapas]

식욕을 돋우어 주는 애피타이저의 일종으로, 바(bar) 등에서 즉석으로 작은 접시에 담아 파는 간단한 요깃거리이다. 하루에 5식 문화를 갖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과 저녁 후에 이 따빠스를 먹는다. 원래는 유리잔에 음료수나 술을 채운 후 파리로부터 음료수를 보호하기 위해 빵 한 조각을 올려놓던 것으로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도 역시 다양한 Tapas(따빠스)를 즐길 수 있는데, 생선, 육류, 야채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Tapas(따빠스)를 맛볼 수 있다. 올리브나 치즈와 함께 차게 먹거나 오징어 등 해산물과 튀겨서 먹기도 한다. 최근에는 Tapas(따빠스)를 간단한 한 끼 식사로 대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카탈루냐 사람들은 Tapas(따빠스)를 와인이나 스파클링 워터 등과 함께 즐긴다.


- 에스쿠델랴 [Escudella]

보티파라 (botifarra)라고 부르는 소시지나 후추, 계피로 양념한 고깃덩이로 만든 카탈루냐의 스튜로, 주로 겨울에 먹는 카탈루냐 특유의 스튜요리이다.


사진 출처 : 구글


- 파 암 토마케트 [Pa amb tomàquet)

토마토 및 훈제고기를 넣은 빵으로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다.


- 크레마 카탈라나 [Crema catalana)

크렘 브륄레(Crème brûlée)라고도 하며, 꼭대기에 단단한 캐러멜을 올린 기름진 커스터드로 조리된 캐러멜을 커스터드 꼭대기에 부어서 만든다. 개인 램킨 접시에 담아 차갑게 해서 가져다준다.


- 코카 [Coca]

토핑이 얹어있는 짭짤하고 단 페스트리이다. 이탈리아의 피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투론 [turron] 

누가의 일종으로, 전형적으로 꿀, 설탕, 달걀흰자, 구운 아몬드나 다른 구운 견과류로 만들어지며, 보통 네모꼴 과자나 둥근 케이크 모양으로 만든다.


사진 출처 : 구글




시장을 나서면서,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갖가지 과일을 썰어 담은 혼합과일 컵을 2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하나 받아 들고, 눈으로 맛을 음미하며, 근처 카페에 마련된 노천 테이블 하나를 골라 앉았다. 여전히 보케리아 시장 입구는 바르셀로나 시민과 관광객은 물론 집시와 각국에서 온 외국인들로 넘쳐나, 서쪽으로 기운 태양으로만 하루의 움직임을 가늠케 했다. 모든 사물이 세세한 부분까지도 선명하게 드러내어 매혹적으로 반짝거린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켜놓고 보케리아의 컬러가 여운으로 남아있는 작은 컵을 만지작 거리며, 파노라마처럼 흐르는 수많은 식재료를 상기시키면서, 나도 모르게 저녁 메뉴를 눈앞에 그려보는 자신을 발견했다. 해산물이 풍부하게 들어간 사르수엘라(Zarzuela)가 좋을까? 아니면, 간단히 맛볼 수 있는 타파스(tapas)를 먹을까? 그것도 아니면, 베르무트(Vermut) 한잔과 부드러운 하몬(Jamon)으로 저녁시간을 보내볼까? 그러는 사이에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위로하고 휘황찬란한 가로등이 길을 밝히며, 나는 발 걸읆을 재촉했다. 


그날 저녁, 딱히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중간 어디쯤에 보이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던 기억뿐이다. 나의 후각과 미각은 그렇게 시각에게 저만치 뒤처져 아무리 어떤 맛을 보았는지, 그 향이 어떠했는지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보케리아의 컬러들뿐이다. 누가 그랬던가? 지중해의 빛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빛이라고... 이 지중해의 적당한 빛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의 형체와 색채를 최적의 상태로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으로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대도시에서의 회색빛 일상보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자연 그대로를 바로 보려고 하는 것. 바르셀로나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에는 이처럼 자연과 함께하고자 하는 바르셀로나의 일상이 지중해의 색채 속에 그려있다. 이렇듯 일상적인 사물에 숨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보케리아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역사와 삶과 미래가 움직이는 방식이리라.




여행 중 유독 음식 사진을 찍지 않는 관계로 참고 사진으로는 구글 검색에서 이미지를 얻어 옮을 밝힙니다. 여행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먹는 시간이기에 그 시간만큼은 사진보다는 입으로 담고, 마음으로 느끼며, 머릿속에 기억해 두겠다는 작가의 개똥철학이자 고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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