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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pr 22. 2019

구정 연휴는 바르셀로나에서 (下)

나도 축제 기간인 줄은 몰랐지 (성에우렐리아 축제)




새벽, Y언니를 배웅하고 조금 더 쉬다가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방문한 바르셀로나 카페 Federal Cafe. 이 곳은 바르셀로나 맛집 평가 사이트 에디터였던 현지인으로부터 전달받은 맛집이었다. "스페인을 처음 오는 친구들이라 바르셀로나의 핫한 레스토랑, 바, 카페를 가고 싶어"라는 문의에 그는 성심성의껏 10여개의 리스트를 보내왔다. 그 중 우리가 가본 곳은 두 군데 였는데, 둘 다 요즘 한창 인기일 듯한 분위기를 피우고 있었다.


페데렐 카페에는 꽤나 다양한 음료와 먹을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콤부차(Kombucha)라는 낯선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시선을 한 곳에 고정하고 있자 S언니가 내 시선의 끝을 확인했다. "잘 없는건데 여기엔 있네. 그거 몸에 좋아" "그래...요? 그럼 난 결정(S언니와는 아직 반말과 존댓말의 경계에 있었다)"  타지생활을 하면서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아프면 안된다. 서럽다'라는 신조로 건강에 더욱 신경쓰고 있는 터라 그녀의 한 마디는 절대 지나칠 수 없는 한 마디였다.







든든하게 브런치를 먹고 거리로 나서니 평소의 주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스페인 국경일과 발렌시아 휴일만 표시한 내 캘린더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바르셀로나의 휴일, 이 날은 성에우렐리아(Sant Eurelia) 축제일이었다.


이토록 반짝이는 날씨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축제를 즐기고 있었고, 그 사람들의 한 발짝 뒤에서 여행객들은 그 분위기를 눈과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가장 큰 축제인 메르세 축제(매월 9월 중순쯤 시작된다)는 알고 있었지만, 성에우렐리아 축제는 전혀 알고 있는 바 없었기에 그냥 마음 편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볼거리가 보이면 잠시 멈춰 서고, 만족할 정도로 보고나면 다시 이동을 하고- 그녀들과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이 멋진 축제 풍경을 즐기기로 했다.







고딕 지구를 잠시 돌아다니다가 우리는 커피 한 잔을 하기로. 작은 광장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그대로 3시간을 줄곧 수다 떨었다. 나는 떠들기보다는 듣는 쪽이었는데 S언니와 Y의 쿵짝쿵짝이 꽤나 흥미롭고 재밌었다. S언니와 Y는 이제 2일째 보는 건데 이렇게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니! 대단하다! 나에게 부족하거나 없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 늘 대단하게 느껴진다.







숙소로 걸어 돌아가는 길에는 람블라스 거리에서 행진(Cabalgata)가 있었다. 커다란 인형과 음악 군단이 흥겹게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숙소에 들어가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성에우렐리아 축제를 구글에서 검색해 스페인어 웹사이트를 보니-언어를 배우면 이럴 때 편해서 좋다. 누군가는 언어를 배우면 그 나라 책을 읽어서 좋다던데 나는 아마 평생 그 레벨에는 닿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마침 다음 날 아침에 인간 탑 쌓기 엘카스텔(El castell)이 예정되어 있었다.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인 이 인간 탑 쌓기는 메르세 축제나 성에우렐리아 축제 등 카탈루냐 지방의 축제일에 하우메(Jaume) 광장에서 볼 수 있다. 그간 책이나 영상으로만 봤지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와우


인간 탑 쌓기는 진행되는 내내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딱 한 번 하고 끝나는 걸까봐 택시를 타고 날아가 딱 정각에 하우메 광장에 도착하니 동네별로 옷을 맞춰입고 탑 쌓기를 하기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곧 광장 여기저기에서 파랑, 빨강, 노랑, 초록 색색의 탑이 올라왔다. 10m가 넘는 높이를 작은 체구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꼬맹이들의 용기도 대단했지만 아래 탑을 이룬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의지와 힘의 전달, 부들부들 몸이 떨리는 와중에도 모두를 위해 버티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하고 있는 그들의 아래에는 손과 팔을 모아 받침대가 되어 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아 글 쓰는데도 울컥하려고 한다. 현장에서는 조금 울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성향이 비교적 맞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아마 다른 유럽 국가보다 좀 더 떠들썩하고, 놀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화르륵 타오르는 성질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스페인에서는 밥도 많이 먹지 않는가. (특히 우리 동네) 거기에 더불어 스페인은 거리별로 혹은 동네별로 모임을 가지고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문화가 강하기에, 어쩌면 '우리'의 '공동체 문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바르셀로나 가이드인 B씨와 D씨를 만나 중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간 발렌시아에서 혼자 중식당을 갔을 때는 끽해야 볶음밥과 메뉴 한 개를 주문하는 게 전부였던지라 이렇게 다양한 중국 음식을 먹는 것은....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심지어 전부 다 맛있었다. 역시 동네 사람의 추천 맛집은 실패하지 않는다.


한참을 와구와구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가게 안에 두리번 두리번 티나게 눈길을 돌리는 두 남자가 보였다. 99% 확률로 소매치기였다. 원래도 핸드백을 크로스로 메고 어깨에서 풀지 않았었지만 긴장하고 한 손으로는 가방을 꼬옥 쥐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더 빠르게 수저를 돌리며 식사를 이어갔다. -나는 먹는 것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덕분에 이 때부터 대화 주제는 '바르셀로나 소매치기 수법', '소매치기 당한 썰' 등등 엄청난 얘기들이 오갔다. 그리고 안쓰럽게도 후배 Y는 소매치기를 눈 앞에서 보고는 너무 긴장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D가이드에게 후배 Y의 가우디 투어를 예약해놨던 터라 다음 날 아침에는 미팅장소로 Y를 배웅하러 같이 나갔다. 헌데 오늘 예약 손님이 Y뿐이라는 것 아닌가! D가이드는 "별 일정 없으면 같이 다녀요"라고 유쾌한 제안을 해주었고 나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2007년 처음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스페인에는 가이드 투어가 별로 없었다. 그냥 대학 수업에서 배웠던, 그리고 책으로 읽었던 지식들을 기반으로 스페인의 건축과 미술관들을 다녔고 나는 구엘공원에서 바르셀로나 전경을 내려다 본 순간, 이 도시에 흠뻑 반해버렸다.


2011년 두 번째 스페인 여행을 할 때도 나는 그저 바르셀로나와 몇 도시를 홀로 설렁설렁 돌아다녔다. 제대로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를 받은 건 2013년 친구 M과 친한 언니 E와의 여행에서였다. 'E언니가 스페인 여행이 처음이니 가우디 투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중간중간 아는 내용이 나와도 역시 투어는 재밌었다.


그 뒤로 스페인은 매년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곳이 되었고, 바르셀로나에는 특히나 투어 프로그램이 많고, 다양해졌다. 그에 따라 경쟁이 생기면서 가이드 내용의 퀄리티도 더욱 올라갔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들은 가우디 종일 투어는 더 흥미진진했다. 나의 격한 리액션에 D가이드는 "아니 바르셀로나 처음 온 사람처럼 리액션이 왜 이렇게 좋아요?"라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재밌는걸요.







2년 전, 회사의 배려로 안식월을 쓰고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나는 매일 아침 조깅을 했다. 어느 날은 에스파냐 광장 쪽으로, 어느 날은 콜롬버스 동상 쪽으로, 또 어느 날에는 구엘 공원 뒤쪽을 뛰었다. 구엘 공원은 지금까지 거진 10번은 왔을 듯한 곳이지만, 몇 번을 와도 이 곳에 질리거는 커녕 항상 이곳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우디는 분명 이 곳을 설계했을 때 이 곳에 살게 될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느끼도록 하고 싶었겠지.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는 만소스 카페(Manso's Cafe). 만소스 길의 시작점에 있어 만소스카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곳은 얼핏 보면 '지하철 역 옆에 있는 작은 카페'로만 보일 지도 모르겠지만 이 곳의 크로아상 퀄리티는 정말 후덜덜하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열흘동안 만소스 카페에 세 번을 왔다. Y언니와 S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틈만 나면 "만소스 카페 크로아상 먹고싶어"라고 웅얼거리곤 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의 진짜 마지막 식사는 아레나(Arena) 쇼핑몰의 옥상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곳에서 밥을 먹으려 했기 보다는 이 곳에서 바라보는 멋진 노을 풍경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로맨틱한 기분이 절로 드는 이 곳은 언젠가는 연인과 올라와서 손도 꼬옥 잡고, 포옹도 꼬옥 하고 싶은 곳인데 이번 생애에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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