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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pr 22. 2019

스페인 발렌시아의 부활절

하지만 비바람이 무섭게 불고 있지요




세마나 산타. 부활절이 있는 주간을 뜻하는 '성 주간'이 바로 이번 주였다. 한국 사람들이 명절 연휴를 끼고, 혹은 5월에 연휴와 주말을 잘 배합시켜 여행을 간다면 유럽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주간에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세마나 산타에는 휴일을 끼고 여행을 떠난다.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나 친구들도 많이들 여행을 떠나면서 "너는 어디 안 가?"라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렌시아에 있을거야"라고 답했다. 세마나 산타에 들어서기 직전 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왔다. 항공권이 그 때가 더 저렴하기도 했고 나는 사실 '스페인 발렌시아의 세마나 산타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오니 발렌시아의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가끔 비가 무섭게 내리는 날은 있었지만 이렇게 몇 일간이나 비가 계속 내리고, 그보다 더 매섭게 바람이 부는 발렌시아는 처음이었다. 북동 11m/s. 발렌시아 전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은 방 안에 있을 때도 그 위력을 느낄 수 있는 소리를 계속 내뿜었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오면 비바람에 물에 빠진 쥐 꼴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우산은 그냥 바람이 부는대로 춤을 췄고, 심지어 가로수들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그런 상황이었으니 예정되어 있던 행사는 제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거센 바람에 길거리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건너 들은바로는 지난 목요일부터의 세마나 산타 행사가 거의 취소됐다고 한다. 늘 날씨가 좋은 발렌시아에서 이렇게 날씨가 안 좋은 나날이라니.... 그것도 세마나 산타에 이런 날씨라니... '어쩌면 노트르담 성당때문에 슬퍼서 하늘이 이런걸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오늘은 세마나 산타 행사의 중심지인 카바냘(Cabanyal) 지구에 가 보았다. 발렌시아 말바로사 해변 옆에 위치한 카바냘 지구는 낮고, 색이 진하고,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발렌시아 센트로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어째서인지 세마나 산타 행사와 전시 등은 이 곳이 중심이라고 한다.


뭔가를 할 예정이었던 행사 셋팅은 덩그러니 길의 한 쪽에 놓여 있었다. 어쩌면 어젯 밤 잠시 비가 그쳤을 때 행진을 했었으려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 나는 그냥 이 휑한 풍경이라도 카메라에 담아 보자며 오랜만에 카바냘 지구의 거리를 쏘다녔다.







그러다가 귓가에 묵직한 악기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어라 내가 방금 잘 못 들었나?'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주변 소리에 집중하니 저 멀리에서 다시 악기 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그 방향을 따라 걸어가보니 악단이 있었다. 유레카!




가족, 지인을 찍는 사람들
곧 그들은 카바냘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조금이나마 세마나 산타 행사를 보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들이 걸음을 옮기자 그들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고 있던 주위 사람들도 움직였고, 나도 덩달이 움직였다. 사실 세마나 산타의 메인 행사는 밤의 행진인데 그거는 할 거라 도저히 확신을 할 수 없었고 낮에 하는 무언가라도 보자며 길을 나선 게 다행이었다. 잘했어 나!


어느 브로슈어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던 9시반의 작은 행진을 보고, 1시반에 예정되어 있는 행사를 기다릴지 말지 고민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오늘 무료 입장인 주변 박물관부터 우선 다녀오기로 했다. -발렌시아에 있는 다수의 박물관, 미술관은 일요일에는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쌀 박물관. 발렌시아가 스페인 전체 중에서도 '쌀'로 유명한 지역이긴 하지만 이런 박물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얼마 전 발렌시아에 묵고 간 친구의 에어비앤비에는 발렌시아 박물관 리스트 안내지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를 쭈욱 보다가 이 박물관의 존재를 알게 되고는 '나중에 한 번 가야지-'라며 기억을 해 두었었다.


박물관은 크지 않았다.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이 곳은 발렌시아 사람들이 옛날에 쌀을 어떻게 가공하였는지 오래된 방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옛것'을 유지해 둔 곳이다. 이제는 많은 기계와 기술이 발달하여 이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그들의 옛 모습을 후대가 알 수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이 곳에서는 '쌀의 역사' 비디오도 보여준다. 인도 혹은 중국에서 시작된 쌀은 시바신과 관련있으며, 스페인에는 1천년 전에 아랍인들이 들여왔다고 한다!-







세마나 산타 마리네라 박물관. 오늘의 컨셉에 맞게 발렌시아에서 역대 진행된 세마나 산타 행진의 기록들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이 곳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쌀 박물관' 바로 옆에 있던 터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방문객은 나 밖에 없던 '쌀 박물관'과 달리 이 곳에는 세마나 산타 주간을 기념하여 가족들과 박물관을 방문한 이들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조금은 아쉬운 첫 스페인 발렌시아에서의 세마나 산타(Semana Santa)였지만 모쪼록 나도 당신도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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