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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pr 24. 2019

죄송하지만 또 바르셀로나입니다

친한 친구와 함께 한 바르셀로나는 또 다르더라



그렇게 "퇴사하라"고 외치던 때는 꿋꿋이 버티며 회사를 다니던 친구 H가 "나 퇴사할거야"라고 문득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나 스페인 여행할거야"라는 이어지는 그녀의 한 마디에 나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마음 속으로- 11년을 꽉 채워 일한 H의 자세한 근황은 얼굴을 보고 물어보기로 했다.




3월 29일 금요일



그렇게 나는 6주만에 또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H와 금토일요일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내고, 그녀와 함께 발렌시아로 같이 돌아와서 -스페인의 3번째 도시라지만- 작고 평화로운 이 곳의 매력을 소개하는 일정이었다. 그 뒤 그녀는 매력쟁이 안달루시아 지방(스페인 남부)를 여행하고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었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버스에서, 아니 그 전에 있던 스페인 수업에서부터, 아니 어쩌면 그 전 날부터 나는 무척 들떠 있었다.







숙소 앞 작은 골목에 H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 그녀가 올 것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겨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곧 저쪽 골목에서 H가 등장했다. "나 너무 힘들어~!"라고 외치는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 톤에 나는 웃음이 났다.


다정한 H는 나를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무척 유명한 베이커리에 들려 치즈케이크를 사오는 길이었다. 이건 이 날 말고 다른 날에 먹었는데, 하..... 맛있었다. 역시 바르셀로나의 카페들과 베이커리들은 최고다. 과연 대도시구나! 풍족한 힙플레이스 인프라의 바르셀로나여!







이 날은 불금. 그렇다. 레스토랑을 예약하지 않은 우리는 몇 개의 레스토랑에서 퇴짜를 맞은 뒤에야 두 명이 앉을 자리를 만날 수 있었다. 스페인에 지인들이 놀러올 때면 나는 언제나 크고 작은 '가이드 병'이 발생하기 때문에, 레스토랑을 찾아 배회하는 내내 나는 'H를 빨리 앉혀야 되는데! 빨리 다리가 쉴 수 있게 해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되뇌이고 있었다. 우리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발견한 순간 분명 내 표정은 '안도감 100%'를 한껏 표현하고 있었을 것이다.







숙소가 보른지구 한 가운데에 위치한 덕분에 나는 늘 들러가던 보른지구를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보른지구 숙소는 처음이었다.







친구가 치즈케이크를 사온 베이커리 호프만 카페(Hofman Cafe)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예전에도 온 적은 있었지만 그 때는 크로아상만 먹어 봤었고 생각보다 평범한 맛이라 생각했었지만 이 날, 바르셀로나 가이드들이 강력 추천하는 다른 메뉴를 먹어보니 "와 맛있다"라는 말이 바로 튀어 나왔다. 역시 전문가의 말은 잘 듣고 볼 일이다.


H와 만난 김에 오랜만에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H가 스페인에 놀러와서 만났어요! 바르셀로나에서 만났어요" 나는 웃음 머금은 말투로 엄마에게 상황 보고를 했고, 속은 누구보다 여리고 보드랍지만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하고 짧은 어투를 가진 엄마는 "너 또 바르셀로나 갔어? 공부는 언제 하려고 그러니?"라 답하였다. 네 어머니. 죄송하지만 또 바르셀로나입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는 매일 도서관에 서너시간씩 머물며 열공 했다고요!







토요일, 우리는 바르셀로나 근교 지로나(Girona)를 가기로 했다.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는 평가는 누누히 들어왔지만 실제로 가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바르셀로나 근교는 몬세라트밖에 안 가 봤었다) 지로나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몇 한국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것. 맥주를 한 캔과 감자칩, 수다와 함께 열차를 타고 이동하니 금새 지로나에 도착했다.




구시가지로 넘어가는 길
햇빛을 사랑하는 사람들
칸로카님의 아이스크림집도 갔죠
돌과 계단의 도시 지로나
미드에서 본 그 곳이잖아!




지로나에 대한 인상은 '돌과 계단의 도시 = 돌계단의 도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구시가지로 넘어간 순간부터 사방 팔방으로 돌로 만든 둔탁한 건물과 계단이 펼쳐지니 꽤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이 곳에서 그렇게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하는 것일까.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낼 수 있어서? 판타지를 찍기에 딱 좋아서?


돌로 만들어진 건축이 주는 특유의 느낌때문에 작년에 다녀온 프랑스 남부의 작은 중세 도시의 모습이 겹쳐보이기도 했지만 비슷한 듯 느낌이 꽤 달랐다. 프랑스가 조금 더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이라면 지로나는 좀 더 거칠고 날 것의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지로나에는 무슨 수맥이라도 흐르는 것인지 나와 H의 카메라 SD카드(메모리카드)가 번갈아가며 말썽을 일으켰다. 자꾸만 포멧을 하라며 경구 문구가 뜨고 찍은 사진을 안 찍혔다고 우기던 나의 카메라가 먼저 말썽을 피우고 내 카메라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제정신을 차릴 때 쯔음에는 H의 카메라가 말썽이었다.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에게 이 날은 정신적으로 다소 힘든 날이었는데, 그녀 특유의 다정함과 차분함을 끝까지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내심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했더랬다.







지로나에서 바르셀로나로 돌아오는 길에 식료품점과 슈퍼를 들려 저녁꺼리를 사갔다. 파스타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H의 파스타를 또 먹는다는 생각에 나는 또 신이 났다. H도 그렇고 스페인에 와서 사귄 이탈리아 친구들의 파스타들을 먹고 나니, 나 스스로는 파스타를 잘 요리하지 않게 된다. 내가 만든 거는 그 맛이 나지 않거든. 이건 마치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 엄마 반찬 맛이 안 나는 그런 느낌이란 말이지.


무튼 우리는 너무 맛있게 와인과 토마토 소스의 라비올리 파스타를 헤치웠다. 물론 끊이지않는 수다와 함께 말이다. 사진을 보며 글을 쓰고 있자니 H가 만들어 주는 파스타가 또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한 달간의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있다-







이제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머무는 시간은 몇 시간 남아있지 않은데 일요일 오전의 바르셀로나 하늘은 꽉 찬 회색이었다. 당장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였다. 다행히 비가 오지는 않아-심지어 바르셀로나를 떠날 시간이 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래졌다!- 우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터미널에 가서, 가성비 좋은 터미널 카페에서의 점심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납시다, 바르셀로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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