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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pr 21. 2019

구정 연휴는 바르셀로나에서 (上)

2월, 구정 황금연휴를 맞아 친구들이 놀러왔다


"너 있는 동안 스페인 놀러가야 겠다!"


내가 곧 한국을 떠나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했던 말이다. 그들의 말 속에는 어느 정도의 진심과 어느 정도의 인사치례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헌데 이 말을 날린 지인들 중에 특출난 한 명이 있었으니 바로 구정 연휴에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왔던 Y언니였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톡톡튀는 성격과 매력을 가진 그녀는 나에게 저 말을 하고 일주일 뒤 "나 항공권 끊었어"라며.... 심지어 나보다 더 스페인행 항공권을 끊었다. 그게 아마 2019년 구정 연휴로부터 거의 1년 전의 일일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그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추진력 끝내주는 멋진 사람 같으니!







그렇게 구정 연휴에 Y언니와 그녀의 절친 S언니가 스페인에 놀러왔다. 보통 일주일 이상 스페인 여행을 한다고 하면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마드리드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여행 일정을 짜거나, 적어도 바르셀로나 근교 소도시를 여행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녀들은 딱 바르셀로나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S언니는 "난 한 곳에 길게 있는 게 좋아. 지도를 안 봐도 그냥 슥슥 길을 찾아다니는 느낌이 좋거든"라며 2주가 넘는 기간동안 바르셀로나에만 딱 있었다. 역시 멋진 언니들이다.


Y언니의 일정에 맞춰 가는 버스편 티켓을 끊어두고 나니 대학 후배인 Y도 "언니 저 스페인 가려고요!"라고 연이어 연락이 왔다. 마침 Y&S언니가 오고 1주일 후에 바르셀로나에 온다는 일정이라, 그냥 내친김에 쭉 바르셀로나에 있기로 했다. 꽤나 긴 여정이 결정되었다. 분명 처음에는 3-4일 정도 다녀오려는 계획이었는데 말이다. 나도 지인들이 이렇게 연이어서 들어올 줄 알았나.


다섯번째, 여섯번째 바르셀로나까지는 횟수를 세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게 몇 번째 바르셀로나 방문인지 모르겠다. 스페인으로 넘어오고 나서 부터는 세지 않게 되었다. -하루나 이틀정도로 짧게 바르셀로나를 들려가는 일들이 생기면서 이걸 횟수로 세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해졌다- 혹자는 "이제 바르셀로나 지겹지 않아?"거나 "심심해서 어쩌냐"고도 그의 의견을 나에게 개진했는데, 이렇게 여러 번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바르셀로나에 전혀 질리지 않았다. 물론 첫 번째, 두 번째 바르셀로나처럼 모든게 반짝여 보이던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역시 '나의 바르셀로나'니깐.







이번에는 일정도 좀 여유있다 보니 아직 못 가본 바르셀로나&근교의 가우디 작품들을 정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목표한 것들의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 결국 남은 작품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바르셀로나에 언젠가 또 갈 예정이다. 아, 그러고보면 지지난 방문때도 지난 방문때도 가보고 싶었던 Bar에도 여전히 못가봤다. 이렇게 바르셀로나는 자꾸만 나에게 또 가야만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만들어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 성가족성당)의 전신이 는 크립타 데 콜로니아 구엘. 구엘이 만든 산업단지이자 하나의 작은 도시인 콜로니아 구엘은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있지만 기차나 전철을 타면 1시간 내외로 당도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이번 바르셀로나 일정동안 콜로니아 구엘은 꼭 가보고 싶었고, 개인적으로 움직일 시간이 나자마자 여기부터 향했다.


자칭 '가우디 빠(순이)'인 나는 인포메이션 센터 건물에 있는 전시회장에서 한 번 울었고, 콜로니아 구엘 성당에서 또 한 번 감동해서 울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대단한 아름다움을 볼 때면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저 먼 곳에 있는 10대때부터 지금까지, 이제는 조금 무뎌질 때도 된 것 같다만, 내 눈물샘은 끝까지 예민한 성격을 유지하려는 모양이다.







날씨도 오디오 가이드도 멋진 건축물들도 더없이 완벽했다. 마침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열차편도 딱 5분 정도 뒤에 도착할 예정이라 빠르게 콜로니아 구엘 역으로 복귀했다.


한 숨 돌리고 기차 벤치에 앉으니 눈 앞에 뭔가 번쩍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세번 뭔가 번쩍했다. 순간 중학교 3학년 때, 맞은편 고등학교 건물의 언니오빠들이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키며-그걸 또 우리 학교 애들도 거울로 반사시키면서 모스부호를 서로 날리는 거마냥 일주일 정도를 서로 그렇게들 놀더라- 복도에 번쩍. 번쩍하고 빛이 들어오던 게 생각났다. 누군가 거울로 햇빛을 반사시키는 느낌의, 딱 그 번쩍임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건너편 플랫폼의 뒤쪽으로, 낮은 담벼락 뒤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자기 쪽을 쳐다보게 하려고 손거울로 햇빛을 반사한 것 같았다. "아 뭐야.... 동양인 괴롭히는건가"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내리려던 찰나,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쌍시옷 그지같은 놈을 다 봤나.....







그리고는 바로 열차가 들어와 나는 그에게 아무런 보복이나 액션을 취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열차가 들어오기 딱 1분 전에 행동을 취한 걸 보니 보통 놈은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상습범이다. '스페인 경찰청은 이메일 접수같은 건 없나'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하며 부글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켜보았다.


노력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돌아와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자 그 놈의 기억은 잊혀졌다. 스페인 제 3의 도시인 발렌시아지만 어째선지 우리 동네에는 베트남 쌀국수 집이 하나도 없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고 간사한 존재라 이렇게 무언가를 먹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것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해서 작년 여름, 친구를 만나러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도 "뭐 먹고 싶은 거 있냐"는 친구의 물음의 나는 즉각 "베트남 쌀국수"라고 답하였다. 파리에는 베트남 음식집이 몰려있는 동네가 있는데, 그 곳의 수준이 어마무시하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마주한 그 곳의 베트남 쌀국수는 정말이지... 말해 뭐하겠는가. 먹어봐야 한다. 국물이 정말 끝내준다. 파리에서의 해장 넘버원은 베트남 쌀국수다.


바르셀로나에는 베트남 쌀국수집이 서너개 정도 있었는데 나는 그 중 한 곳 밖에 가보지 못했다. 파리나 서울의 쌀국수 집보다는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반년만에 먹는 쌀국수는 과연 맛있었다. 


'먹어봤자 아는 맛이다'라는 문구가 쓰인 모 연예인의 다이어트 명언이 있다. 하지만 진정한 명언은 그의 댓글에 있었으니 "그래서 먹는거다"라는 것이다. 그러하다. 내가 아는 그 국물맛, 내가 생각했던 그 국물맛이기에 베트남 쌀국수는 더없이 맛있고 반가웠다.



 




그렇게 여러 번 바르셀로나를 왔었지만 이 곳이 '쇼핑하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Zara, Mango, Camper 같은 스페인 브랜드를 한국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 정도의 보통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쇼핑과 브랜드에 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Y&S언니와의 바르셀로나 쇼핑은 가히 놀랍고 놀라웠다. 그렇다. 그녀들과 몇 일 함께 있어보니 이 곳은 쇼핑하기 좋은 곳이 맞았다.


일단 이 때가 겨울 세일(Rebajas) 기간이었던 지라 거의 대부분의 브랜드가 50% 할인 상태였다. 스페인 여름/겨울 대 세일 기간에는 스페인 브랜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브랜드가 세일에 들어간다. 자국 브랜드의 경우 70%까지도 세일을 하고, 갈색병으로 유명한 E모 코스메틱 브랜드 같은 곳도 이 기간에는 30% 세일을 하곤 한다.


거기다가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텍스리펀률이 꽤나 좋은 편이다.-비록 나는 어학연수 중이라 텍스리펀과는 상관이 없지만- 고로 그녀들의 목표는 스파 브랜드가 아니었다. 국내에 정식수입 혹은 구매대행으로 엄청 비싸게 팔리고 있는 의류 브랜드 등이 주요 목표로,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긴 이름의 브랜드들을 유창하게 발음하고 있었다. 역시 멋있다. 그리고 그 멋짐에 홀려 어느 새 나도 원피스를 두 개 사버렸다. 한국에서 파는 가격의 1/3도 안 되는 가격이니 '잘 샀다' 생각하고, 그 원피스를 입는 날마다 사람들이 "예쁘다"해주니 다시 한 번 '잘 샀다' 생각하는 바이다.







먹기도 참 바지런히 잘 먹고 다녔다. 빵집이든 밥집이든 우리가 간 곳은 늘 성공적이었다. 스페니쉬의 저녁 식사시간(보통 밤 9시에 먹는다)보다 일찍 먹다보니 가게 오픈 시간에 가면 예약 없이도 보통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신 1시간 반만에 식사를 마쳐야했지만 우리에게는 '문제없음'이다.


그럼에도 이 곳은 한국 사람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전 날 전화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까사 롤레아(Casa Lolea). 짭퉁인 까사 롤라(Casa Lola)와 헷갈리면 안 된다고 가이드가 얘기해줬다는 이 곳은 가이드와 한인민박의 추천때문인지 손님의 절반 이상이, 아니 다수가 한국인 손님이었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 중 첫 번째 접시를 먹어봤을 때 '아-!'하고 느낌이 왔다. 여긴 딱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다. 바꿔 말하자면 '실패가 없는 맛'이랄까. 거기다 위치도 좋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한국 손님들에게 부담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은, 딱 적당한 밥집이었다.







까사 바뜨요(Casa Batllo)까사 비센스(Casa Vicens)는 언니들과 함께 방문했다. '가우디는 역시 (좋은 의미로)미친 건축가다'라고 마음 속에 되뇌이게 되었다. 


까사 바뜨요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입장료가 비싼 곳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또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도 다른 개성을 보여주기에 매우 가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가우디의 건물 중 한 곳만 들어간다면 어디를 가야하느냐'고 는다면 글쎄.... 나는 아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추천할 것 같다. 또한 까사 바뜨요의 '오디오 가이드'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오디오 가이드의 퀄리티보다도 우수했는데, VR기능을 접목하고 오디오 가이드 기기의 화면을 활용한 시스템에는 가히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까사 비센스는 대중에게 오픈한 지 아직 몇 년 되지 않은 곳이다. 가우디의 초창기 작품이고 다른 건물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사람도 덜 붐비는 곳이다. 이 곳에서는 사진의 테라스 공간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서 책 한 권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저기에 앉아서 책 읽으면 몇 시간이고 앉아있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그럼 진상이 되려나-







그리고 그 날 저녁 후배 Y가 도착했다. Y의 스페인 첫 저녁이자 Y언니의 스페인 마지막 저녁이었다. 몇 일 전 방문했던 숙소 근처 풀페리아(Pulperia : 문어 요리집)가 꽤 괜찮았던지라 이 날 다시 한 번 방문했다. 누군가의 첫 스페인 여행 식사로, 누군가의 마지막 끼니로 부족함이 없는 한 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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