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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ug 26. 2019

스페인에서의 생일맞이

어학연수 학생의 생일맞이는 조촐합니다



생일이다



이제는 다가오는 게 영 반갑지 않은 생일이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생일을 기점으로 한 살을 더 먹다 보니 더욱이 반갑지 않다. 그래서인가 보다. 어릴 적에는 D-360일부터 생일을 세어가며 기다릴 정도였는데 이제는 영 반갑지가 않은 게 말이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오후 5시쯤부터 폰이 우웅 우웅하고 울렸다. 친구들의 생일 축하 연락이었다. 괜스레 오늘따라 친구들도 가족들도 더 보고 싶어 지는 날이다. 남자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는 중에 자정이 되어서 “오빠 빨리 나한테 축하한다고 말해!”라고 외쳤으나 내 생일 일자를 까먹은 남자 친구는 영문을 전혀 모르겠다는 낯빛이었고 나는 그 상황이 그저 웃겼다. 이걸로 종종 남자 친구를 놀리곤 한다







아 어젯밤은 재밌었지-하며 즐거운 기분으로 잠에서 일어났다. 이 날을 위해 3개월 전 출국 때 챙겨 온 즉석 미역국을 꺼냈다. 바싹 건조된 상태에서 봤을 때는 ‘이거 괜찮으려나’ 싶었는데 2분간 보글보글 물에 끓여주니 그 모양과 향이 제법 그럴싸하다. 맛도 꽤 좋다. 내년 생일도 이걸로 때워야겠다


이제 오후 3시쯔음 됐을 한국에 전화를 건다. 생일인 만큼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 날도 많지 않을 거다. 아침으로 미역국을 챙겨 먹었다는 딸의 한 마디에 엄마도 한 시름 놓였는지 방긋 웃는다







여기 스페인에서 알게 된 지인들은 내 생일을 알 수 없었다. 나름 친한 친구들은 카톡이 아닌 왓츠앱이, 페북이 아닌 인스타가 연결되어 있었으니깐. 딱히 ‘나 오늘 생일이야 축하해줘!’라고 할 생각은 없어서 먼저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혼자 하루를 보내기에는 조금 울적했는데 B와 저녁에 볼 약속이 잡혔다. M에게도 연락을 넣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느지막이 만나 맥주를 시키고 맥주가 식기 전에 한 잔을 비우고 또 새로운 맥주를 시킨다. 그 맥주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다가 자연스럽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이 오픈되었다. 일순간 B와 M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2초의 정적이 흐른 후 두 친구는 왜 말해주지 않았냐며 약간 서운하다며 서로 한 마디씩 거들었다. 기분 좋은 꾸지람을 들으며 둘과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카페 종업원도 작은 생일 선물이라며 초코칩 쿠키를 하나 꺼내 줬다. 완벽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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