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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Sep 15. 2019

또다시 시험의 노예가 되었다

스페인어 시험 델레(Dele) 준비 중 입니다만




미뤄왔던 델레 시험을 보기로 했다. 원래는 스페인 어학연수 1년이 끝나기 전에 보려고 했었는데 어느 레벨로 시험을 볼지가 애매해 유보해 둔 터였다


결심한 그 날 우선 홈페이지에 들어가 10월 자 시험을 신청했다. 시험까지 남은 한 달 반, 시험 한 달 전부터 시험에 더욱 매진할 수 있도록 2주 동안은 후회 없이 놀고 쉬기로 했다. 190유로의 시험비용을 생각하면 바로 시험 준비에 착수할 만도 하거늘... 그 주간에는 오래전 티켓을 끊은 여행도 예정되어 있었고 곧 내 생일이었던 터라 어쩔 수 없었다고, 구차하게 변명을 덧붙여본다




시험에 매진하기 전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시드라 축제. 이 날은 오랜만에 취하게 마셨다







산세바스티안으로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나는 학원 수업에 다시금 재미를 붙였지만 1년 전처럼 공부에 매진하지는 않았다. 1년 전 스페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자체적으로 공부를 더 하지 않으면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고 새로운 무언가를 알아가는 성취감으로 채찍 없이도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채찍질이 도통 통하지 않았다


해서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라도 이제 ‘시험’이라는 장치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곧 도서관으로 복귀했고 내 하루의 3% 정도를 차지하던 게임도 핸드폰에서 지웠다 (사실 인별그램이나 너튜브를 지우는 게 시간 확보에는 더 도움이 될 듯한데, 도저히 못 지우겠다)







스페인 어학연수를 온 지 1년 하고도 3개월. 델레 시험공부를 하니 나의 부족한 스페인어가 더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 몇 번이나 배운 문법인데도 헷갈리고, 틀리고, 좌절하고를 반복한다. 부족한 어휘력은 더 할 말이 없다. 죽어라 안 외워지는 단어를 볼 때면 새삼 내 뇌가 20대 때 같지 않다는 것을 처참하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체력도 예전만 하지 않다







대충이라도 밖에서 밥을 때우면 공부할 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겠지만, 물가 높은 산세바스티안에서 백수가 매일 외식을 식당에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그렇다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기는 싫다. (한마디 변명을 덧붙이자면 빵은 금방 배고파진다. 나에게는 밥이 아니라 간식이다)


한동안 아침밥은 대충 과일이나 요거트, 크로아상을 먹고 잘 수 있을 때까지 잠을 자고 학원으로 뛰쳐나갔는데, 나는 나를 위해 좀 더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이전보다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 먹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싸간다. 컨디션을 망치지 않기 위해 하루 세 끼 식단을 더 신경 쓰고 있다. 이렇게 아침 점심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 날은 또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장을 봐오면 꽤나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밥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에 열 시간 넘게 공부를 하던 고3 때를 떠올리면서 ‘아....나는 그때 엄마의 도움으로, 급식의 도움으로, 김밥집의 도움으로,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구나’하고 생각이 든다




잠시 글을 써 내려가며 머리를 식혔으니 이제 다시 공부하러 가야겠다. 한글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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