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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Feb 19. 2020

팔이 부러졌다. 그것도 오른팔이

경험해보고 싶지 않았던 스페인 응급실 방문




브런치의 글을 올리지 않은지 약 3주가 지났다. 그간 글을 전혀 올리지 않고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1. 첫 번째는 내가 ‘어플에 문제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고

 2, 두 번째로는-사실 이게 더 중한디- 오른팔이 부러졌다




그 날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금요일이라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기분이 좋았고 평소처럼 아침을 챙겨 먹고, 어학원에 가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밥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았고 따뜻한 햇볕을 쬐며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목적지에 도착 약 2분 전. 마지막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렸다 ‘휴 대체 이 다리 공사는 언제쯤 끝나는 거야. 빨리 끝나고 자전거도로를 좀 편하게 쓰고 싶다’


“트럭 들어 가게 잠깐 옆으로 비켜 주세요!”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여성분과 나에게 인부가 소리쳤다. 내가 주춤거리자 스페인어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생각했는지 인부는 다시 한번 얘기했다


하지만 못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다시 한번 힘을 주고 발을 옮기려는 순간 내 몸은 균형을 읽고 그대로 바닥으로 찍어 내려졌다. 바닥에 가장 먼저 다음 곳은 오른팔이었다. 나는 눈동자를 돌려 그 순간에 바라봤고 그 짧은 순간은 마치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곧 팔이 뒤틀리면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같이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분이 나에게 뛰어왔다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팔이 너무 아파요.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밀려오는 고통과 쏟아지는 땀 속에서 나는 안간힘을 다해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1년 넘는 스페인 어학연수 생활에서 “Me duele(아파요)”를 그렇게 여러 번, 절절하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 회사 출근길이던 이 분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근처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횡단보도에 있을 때부터 내 얼굴이 너무 하얗게 질려 있어서 나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골절입니다


여성분이 데려다준 병원에서는 내 보험으로는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큰 종합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마치 “감기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얘기했다. “뼈가 다행히 어긋나지는 않았다고, 그냥 팔을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이 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어이 의사 양반 그래도 골절인데 깁스는 안 해도 되는 겁니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진통제부터 한 알 먹었다. 밥을 먹은 집 구해 보고야 하는 이야기지만 이 통증에서는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통증이 덜 느껴지니 의사의 무미건조한 처방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사는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 들어가 글을 올렸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변이 달렸다. 대체적으로 스페인에 의료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단출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플하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이렇게 아프니 팔이 이상한 것 같고 어깨도 아픈 것 같고 조금 더 검사를 하고 싶어 진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그래도 나만 이런 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 잤다




불가능 했던 ‘왼손 손톱 깎기’ 남자친구가 깎아 줬다




많이 울었다


대체 갑자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아프면 안 된다고 나는 여기 와서는 그전보다 건강을 잘, 열심히 챙기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구정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지지난주 열심히 세운 새해 그리고 매달의 계획이 모두 틀어진다는 것이 불만스럽고 슬펐고 분노했고 우울했다.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일상생활도.... 특히 요리를 어찌할지도 고민됐다. 한국이었으면 집 앞에 나가 김밥 가게, 국밥 집에서 만원이 되지 않는 가격으로 비교적 편하게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지만, 여긴 스페인이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이 주가 지났다


가끔은 우울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냥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일상생활을 이어 나가야만 했다. 비록 많이 어설프고 많이 느리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어지간한 일들은 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개발새발’ 같은 내 왼손 글씨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좀 사람다운 글씨가 되어 가고 있었고, 칼을 쓰는 요리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왼손으로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 홍화씨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기서는 구할 수가 없으니 몸에 좀 도움이 될 만한 곳이 뭐가 있을까 찾아봐서, 요구르트와 호두 구 기자를 매일 챙겨 먹고 있다. 스스로가 대견한 것은 그림 그기도 손 놓지 않고 매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더불어 왼손 그림도 계속 그리다 보니 요령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물론 어설프고 느린 내 모든 동작, 내 모든 결과물에 무척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뭐 어쩌겠는가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몸이 이렇게 되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지고 있고 나는 매일매일 그들 속에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특히 남자 친구는 내가 더 건강하게 먹고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쉬는 날에도 분주하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고 있다. 같이 살고 있는 플렛 메이트 아주머니는 내 사고 소식을 듣고는 너무 놀라셨고 샤워며 요리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얘기 하라며 작은 부분부터 세심하게, 마치 내 가족처럼 나를 챙겨주고 있다. -설거지, 빨래하다가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슈퍼에서 장을 보고 힘들게 가방에 넣올 때도 주변 사람들이 항상 먼저 나에게 도움이 손길을 건넨다. 아직 세상은 순수하고 아름답고 고마운 곳이다




삼 주가 지났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지나갈 때면 조금 무섭지만 나의 일상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어제부터는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고작 3주 지났을 뿐인데 팔은 원래 90도로 굽어있었던 것처럼 팔을 피고 접을 때면 너무 아팠다. 어제는 계속 신음 소리를 질렀고 오늘은 그 소리는 잘 참았지만 눈물이 자꾸 새어 나왔다. 깁스를 하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깁스를 했으면 6-8주는 지나야 깁스를 풀고 재활치료를 시작했을 텐데 아.... 그러면 더 아팠을 거 아닌가!!!




모쪼록 음성인식 기능을 통해 이렇게라도 글을 쓰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 또 소소하게 고마울 따름이다. 기술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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