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 음식을 맛보고 시드라를 무제한 마시는 곳
(2019년 2월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스페인 술'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샹그리아를 떠올리겠지만,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에는 더 특별한 술이 있다. 바로 바스크 해안 근처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인 '챠콜리'와 오늘의 이야기의 주인공 '시드라'. 시드라는 사과로 만든 발효주로 식초처럼 조금 쿰쿰한 향이 나는 게 특징이다. 브랜드마다 혹은 양조장마다 맛 특징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 술집에서 여러 잔을 마시는 것보다는 여러 술집에서 다양하게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슈퍼마켓에서 살 수도 있고, 시내의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마셔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자들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바로 '시드레리아'라고 불리는 시드라 양조장. 여러 종류의 시드라를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또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곳이다. 보통 산세바스티안 시내가 아닌 외곽에 양조장이 있지만 먼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당일치기의 빡빡한 일정이 아니라면 다녀올만하다. 또한 바스크 지역의 전통음식도 함께 맛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곳이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Astigarraga에 있는 한 시드레리아. 5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가깝고,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는 곳이다. 스페인이 우리나라보다 날씨가 온화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2월, 아직은 겨울인데도 시드레리아를 찾아가는 길에는 이미 봄이 찾아온 것 같았다.
시드레리아 운영 시즌이 아니기도 했고(비시즌 때는 문을 닫거나, 주 1-2회만 연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간지라 양조장 내부는 비어 있었다. 성수기 때는, 특히 저녁 시간에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지인들과 먹고 마시고 놀러 온 사람들로 꽉 들어차서 엄청나게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다음(=올해)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생각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은 어려울 듯싶다. 시드레리아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그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손님이 거의 없던 덕분에 사진은 아주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시드레리아에는 10개의 오크통이 있었다. 모든 종류를 다 마셔봤는데, 각 오크통마다 시드라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 무제한으로 시드라를 마실 수 있다고 위에서 말했지만 모든 시드라를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중 2개 오크통은 우리가 마시고 싶을 때 따라서 마실 수 있었다. 나머지는 직원이 오크통을 오픈할 때만 가능하다. 자리에 있다가 직원이 "쵸치(Txotx)"하고 말을 하면 우리는 잔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시드라를 따를 때는 기포가 생기도록 병을 높이 들어 따라야 한다. 높게 해서 따라야 한다. 시드레리아에서 마실 때도 꼭지 근처에 컵을 대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컵을 낮춰서 시드라를 받아내는 게 정석이다. 병으로 시드라를 따를 때는 여기저기 흘리기 일쑤였는데(여기 현지인들은 한 방울 안 흘리고 잘 따른다. 프로페셔널!) 이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시드레리아마다 구성이나 가격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코스 요리를 먹으며 시드라를 마시는 것으로 30-40유로 정도이다. 산세바스티안이나 톨로사 시내에서 괜찮은 츌레타를 먹으려면 그거 하나로 40유로는 나오는데,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정말 괜찮은 가격이다. 게다가 맛도 아주 훌륭하다.
아직 산세바스티안에 놀러 온 지인들을 시드레리아에 데리고 가본 적은 없다. 분명 열이면 열 명 모두 좋아할 텐데, 일정이나 시즌이 맞지 않았다. 코로나가 끝나고, 친구들이 스페인에 놀러 오고 같이 시드레리아에 가서 시끌벅적하게 먹고 마시고 떠드는 날을 기다린다.
내일은 1여 년 만에 시드레리아에 간다. 오늘은 조금 들뜬 마음으로 잠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