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산세바스티안이 재로 덮인 날
( 2019년의 기록입니다 )
아침부터 거리에 장이 들어섰다. 오늘은 원래 장이 들어서는 요일이 아니지만, 거리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8월 31일. 이 날은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산세바스티안만 공휴일인 날이다. 전국에 공휴일이 같은 우리나라와 달리 스페인에는 세 가지 공휴일이 있다. 스페인 공휴일, 지방 공휴일(provincia 기준), 그리고 도시 공휴일,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참 알면 알수록 신기한 국가다
1813년 8월 31일. 산세바스티안은 화염에 휩싸였다. 숨어 지내던 프랑스 군을 찾아내기 위해 이곳에 온 포르투갈, 영국군은 마을과 사람들을 공격했다.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에 타고, 겁탈당하고,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사람들은 매년 8월 31일이면 같이 모여 서로를 위로한다 -비록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행사가 진행되지 않았지만-
오전 내내 산텔모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바스크 지역의 전통 춤을 추고 있었다
‘8월 31일’의 메인 행사는 저녁때 진행된다. 옛 군복 코스튬을 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총과 대포를 들고 자기 위치를 잡는다. 주변에는 그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동네 사람들 다 여기에 모인 것 닽다’는 생각이 든 순간 ‘악!’하고 놀랄 만큼 큰 소리가 울렸다. 가짜 대포가 발포된 소리였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군인들은 짜인 각본에 맞추어 전쟁을 헸다. 총을 들고 조금씩 전진하는 군인들에 어린아이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가 얼마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부모들은 중간중간 이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밤. 산세바스티안 구시가지 제일 안쪽에 있는 길의 모든 가로등이 꺼진다. 이 거리에 사는 주민들은 매년 그랬듯 테라스에서 촛불을 켠다. 고요함과 웅장함이 가득 해지는 그때 길의 반대편 끝에 있는 성당으로부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다. 이 길의 이름은 ‘8월 31일’ 길이다
이 날 구시가지 거리 곳곳에는 ‘바로 이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그림과 글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1813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길의 끝까지 갔을 때, 커다란 포스터에 적혀있는 문구를 읽고 눈시울이 붉혀졌다
‘우리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세계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이 날을 기억합니다’
그 어느 국가보다도 아픔과 한의 역사를 간직한 한국. 아이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더 우리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또 기억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