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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Apr 10. 2020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은 특별한 것

바르셀로나 근교 마을, 지로나를 가다


나는 홀로 하는 여행을 즐겼었다. 계획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갈 수 있는 것도, 현지인들과 조금 더 얘기할 기회가 생기는 것도, 때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릴 수 있으므로, 나는 홀로하는 여행을 즐겼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 다양하게 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는 것.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5년 즈음부터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몇 년간 이어가게 되었다. 특히 E언니와 M과는 참 여러 번 여행을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 이후에는 혼자 하는 여행이 어색해졌다. 어쩐지 혼자 하는 여행보다 누구와 함께하는 여행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스페인으로 왔고, 다시 혼자 하는 여행을 마주하게 되었다. 여기에 와서 사귄 친구들도 있지만 같이 여행을 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특히 외국인 친구와 여행을 하게 되면 24시간 내내 스페인어 혹은 영어로만 얘기해야 하는 부분,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부분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생활을 시작한 뒤 가끔 친구들과 유럽에서 만나, 반가워서 얼싸안고, 함께하는 여행을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H가 스페인에 놀러 왔다. 언제나처럼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 이틀 차






사실 한 달여 전에도 바르셀로나에 친구들을 만나러 왔던지라 이번 바르셀로나 행에는 'H를 만나는 것' 외에는 목적이 없었다. 그냥 시간이 남으면 지난번에 방문하지 못한 건축물이나 보러 가야겠다 싶었다. 그러던 중 H가 "지로나(Girona)에 가본 적 있어?"라고 불쑥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그 메시지를 꽉 잡았다


"아니! 나도 한 번 가 보고 싶었어"







지로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굉장히 협소했다. '왕좌의 게임'의 촬영지였다는 것, '알함브라의 추억'에서도 일부 촬영을 여기서 했다는 것,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가까운 근교 도시라는 것' 고작 이 정도


그런 나에게 지로나의 첫인상이자 마지막까지 가장 강렬한 키워드로 남은 것은 '돌의 도시'라는 것. 물론 유럽의 오래된 도시와 마을들은 대부분 돌로 지어진 옛 건축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돌로 감싸진 도시가 이번은 처음이 아니었으나, 지로나는 유난히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H도 이에 동감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천천히 걸으며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지로나를 샅샅이 살펴봤다. 코너를 돌 때마다 발견되는 거리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벽이며 바닥이며 온통 회색빛의 돌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차가운 인상은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머금은 지로나의 돌들은 이제 무뎌진 탓인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딱딱하고 고지식해 보이지만 속 깊고 연륜이 있는, 따스함이 있는 그들 말이다






물론 지로나의 모든 곳이 그렇게만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시가지 중에서도 유독 몇몇의 길이 그 모습을 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구시가지 바깥쪽의 길과 건물들은 돌의 건축물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 느낌은 잃은 지 오래된 듯했다. 신시가지 쪽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시가지에서는 더 이상 오래된 건축물을 볼 수 없었지만 또 다른 인상적인 요소가 있었으니, 바로 '카탈루냐'였다.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스페인 동부 지방, 카탈루냐 지역은 원래 하나의 나라였다. '스페인'이라는 이름의 나라로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혹은 매체를 통해 카탈루냐 독립운동은 여러 번 봐왔었다. 하지만 지로나처럼 건물의 80% 이상의 집이 카탈루냐 국기를 걸고, 건물마다 현수막을 걸고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풍경은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의 촬영지로, 예쁜 도시로만 지로나를 인지하고 있던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찍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 벤치에 앉았다. 한 번씩 말썽을 피우던 카메라 메모리카드가 오늘은 유난히 더 말을 안 들었다. 보통 한두 번 메모리카드를 뺐다가 끼면 다시 괜찮아졌었는데 오늘은 몇 시간째 말썽이다. 신경질 오르는 내 머리도, 그 이상으로 뜨거워진 카메라도 쉬게 해 주기로 했다. 뭐, 사진은 여행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지만 그게 여행을 망쳐버리면 안 되니 말이다


사실 H의 카메라 상태가 더 신경이 쓰였다. 지금껏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 날아간 듯했다. 다시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나중에 숙소에 돌아가서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H를 토닥였다. -결국 나중에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깔고 나서 사라진 사진을 찾았다- 어떻게 동시에 나와 친구의 카메라가 이렇게 난리를 칠 수 있는 것인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참 날씨가 좋았다. 3월 말의 지로나는 완연한 봄이었다. "여행에서 날씨가 반이요, 나머지가 그 나머지다. 그 나머지의 반은 여행의 동행자다"라는데 내 지로나 여행은 날씨도 좋고, 동행자도 더없이 좋으니,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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