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모델, 더빙, 시선의 다양성, 공감과 언어를 넘어선 정서에 주목
토(土)맛토마토 창작일기 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있어줘서 고마워.”
마야는 그렇게 말 없이 인사를 건넨다.
토마토에게, 광주의 들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경기도 광주는 꽤 오래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다문화 도시이다.
바로 이 점에 주목해서 우리는 이프로젝트에서 단순히 ‘외국인 모델을 쓴다’는 방식이 아닌,
외국인의 감정과 경험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자 했다.
그저 연기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단면을 직접 가진 인물로부터 진짜 감정을 빌려오고 싶었다.
마야는 폴란드에서 한국에 유학 온 실제 외국인이다.
촬영 초기 우리는 그녀에게 대본을 전달하기보다,
먼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땠어요?"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요?"
"요리할 때, 누가 가장 많이 떠올라요?"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할머니의 토마토 요리, 한국어가 어려웠던 날,
창가에 앉아 해가 드는 걸 바라보던 오후.
그런 조각들이 하나씩 쌓여,
우리는 그녀를 연기자가 아닌 서사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는 ‘연기’보다 ‘기억’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녀의 손끝, 발걸음, 숨소리, 눈길 하나하나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이 묻어난다.
더빙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제된 발음이나 유창한 한국어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어색하고, 문장 끝이 살짝 흔들리는 발성이
이 이야기의 결을 더욱 진실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야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단어들은,
어떤 완벽한 문장보다 진심에 가깝게 다가왔다.
"우리 함께 뿌리내리자. 마음껏 흔들리면서."
그의 목소리는 정확한 문법보다,
한 문장을 부드럽게 품는 숨의 온도로 다가온다.
우리는 그 다소 낮고 망설이는 톤이
이 프로젝트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우리는 흔히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할 때,
언어나 시청각적 장치에 의존한다.
하지만 《토맛토마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언어를 넘어 감정이 직접 전달될 수 있는 가능성.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눈빛,
조용히 웃는 얼굴,
손끝에 닿는 흙의 감각,
잠시 멈추는 호흡,
그리고 이따금 비어 있는 침묵.
그 모든 것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다문화 감수성’의 가장 본질적인 형태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문화의 차이는 오히려 작품에 온도를 더했고,
그 따뜻함은 관객에게 ‘이건 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공감을 남겼다.
《토맛토마토》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하지만 다양성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외국인 모델을 기용했다고 해서,
해외를 배경으로 삼지 않아도,
유창한 이중언어 자막이 없어도,
다양성은 존재할 수 있다.
그건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 이야기의 구성 방식,
그리고 감정을 다루는 손길 안에서 피어나는 것이라고 믿는다.
광주의 흙을 만지며,
토마토에 얼굴을 그리고,
그 작은 존재에게 이름을 붙이는 그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다문화적 언어였다.
“말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건 마야가 마지막 더빙을 마친 뒤 우리에게 해준 말이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가 만든 이 이야기도,
어쩌면 말 없이 전해질 수 있을 거라고.
《토맛토마토》는 그렇게,
정확한 언어보다 감정의 진심을 전하는 방식으로
조용한 공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