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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Feb 18. 2021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갔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가 학교에 불려 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물어보면 될 것을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를 굳이 불렀다. 어쨌든 엄마는 세 딸을 키우며 처음 호출을 받았다.


그 날은 시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나는 시험 한 과목을 완전히 망쳤었다. 과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시험 첫 문제가 올바른 것을 두 가지만 골라라는 것이었다는 건 기억난다. 중간중간 맞는 것을 두 개, 세 개 골라라는 문제 틈틈이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문제에는 몇 개를 골라라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을 때 맞는 답들을 골랐다.



엄마는 선생님과 면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물었다.


"OO과목 시험지에 정답 몇 개만 골라라고 말한 거 말고, 나머지 그런 말이 없는 것은 왜 여러 개를 골랐어?"


"몇 개 골라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답을 다 적었는데. 왜? 다 틀렸어?"


"아니 다 틀린 게 아니라 여러 개 적은 답 중에 답이 다 있긴 했는데... 사실 문제 하나에 답 하나만 적어야 했거든."


"하나만 적어야 하는 거라고?"


"몇 개를 적어라는 말이 없으면 하나만 적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모두 골라라고 하면 네가 생각하는 걸 다 적으면 되는 거고."


"아~ 그래? 그럼 하나만 적어라고 하지. 난 아무 말이 없어서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거 다 적은 거였는데... 근데 선생님은 엄마를 왜 불렀어?"


"선생님이 네가 답을 여러 개 적어서 걱정되셨나 봐."


"그게 왜 걱정되는 거야? 다음부터 하나만 적어라고 하면 되지."


"그러게 말이야."


선생님은 아마 내가 지능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를 불러 조심스럽게 말했고, 엄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다음번에는 나에게 하나만 적으라고 해주셨다. 그때 엄마에게 다 틀렸냐고 물어본 질문에


"그래. 맞는 게 거의 없어. 왜 답을 여러 개 적어? 하나만 적어야지. 아직까지 그것도 몰라?"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몇 개 적어라는 말이 없어 정답 같아 보이는 걸 다 적은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문제 있는 아이처럼 여겨 엄마를 학교에 부르시다니. 물론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뒤부터 판단은 부모가 하는 것이다. 진짜 문제 있는 아이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말 한마디에서 나뉠 수도 있는 것이다.


문득 생각이 난 옛 기억을 나누기위해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그때 기억나? 어떻게 그렇게 대답할 생각을 했어? 담임 선생님처럼 애가 모자란가 하는 생각은 안 했어?"


"내가 생각했을 때 내 새끼가 전혀 안 모자란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걸 진짜 문제처럼 생각해서 널 다그쳤으면, 너 스스로 문제가 있나 하고 얼마나 자존감이 떨어졌겠어?"


"엄마. 에디슨 엄마였어?"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엄마 고마워. 그때 그렇게 이야기해줘서."


"다 지난걸 이렇게 기억해주고 고맙다고 말해줘서 내가 더 고마워."


엄마와 나의 대화는 이렇게 훈훈하게 끝났다.


엄마가 항상 나에게 물어봐줬기에 나 또한 아이에게 물어보려 한다. 그러면 내가 먼저 판단하지 않고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고 들어 보자. 다 이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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