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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경 Feb 15. 2021

명품가방보다 더 중요한 핫도그

마트에서 나오니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톡! 톡! 톡! 집까지의 거리는 10분. 이제 내리는 비니 괜찮겠지 생각했다. 왼손에는 종량제 봉투가 들려져 있었고 그 안에는 생크림, 칼국수 면 그리고 마트에 오기 전 샀던 핫도그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명품 가방이 걸쳐져 있었고, 지퍼가 없는 그 가방 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책이 들어있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비는 예상과는 다른 속도로 떨어졌다. 톡톡 내리던 비는 1~2분 사이에 타다다닥 내리는 비가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핫도그가 젖을까 염려된 나는, 종량제 봉투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빼 빗방울이 들어가지 않도록 봉투를 몇 바퀴 돌려 감싸고 뛰었다. 핫도그가 비에 젖으면 못 먹게 될 거라는 생각에 핫도그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눈 앞에 신호등이 보였다. 집까지는 5분 남은 거리였다. 비를 맞으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그제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는 가방을 인지했다. '아! 가방... 가방 안에 책이 있었지. 지퍼도 없는데 책 다 젖는 거 아냐?' 재빨리 책을 꺼내 종량제 봉투에 넣으려는 찰나에, 책에 핫도그 냄새가 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책을 가방에 넣었다.

지퍼가 있어야 하는 부분을 오른손으로 막고, 왼손에는 종량제 봉투를 꽉 쥐고 집 앞까지 달렸다. 거의 집 앞에 도착하자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옷은 비로 다 젖었고, 당연히 명품 가방도 비에 젖었다. 비에 젖으면 안 된다며 꽁꽁 싼 종량제 봉투 안의 7,000원 치의 핫도그와 명품 가방 안에 있던 13,000원짜리 책은 멀쩡했다.

몇 년 전,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명품가방을 옷으로 감싸고 뛰어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가방으로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가방을 보호하는 모습이 왠지 씁쓸했던 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명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지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갖고 싶어 하지도 않아 선물이 아니고서는 내 돈으로 사본 적이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10분은 나에게 있어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비싼 명품가방보다 아이들 입으로 들어갈 간식과 마음을 채워주는 책 한 권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딸이 종량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빗방울이 묻은 것을 본 딸은 나의 상태를 보고는 비가 왔냐며 왜 전화 안했냐고 했다. 얼마 안 올 줄 알고 그랬다고 말하며 어깨에 멘 가방을 내려놓고 핫도그는 괜찮은지 보라고 했다. 종량제 봉투 끝을 얼마나 돌돌 말아 꽉 쥐고 왔던지 쭈글쭈글해진 부분을 보고는 딸이 눈치를 챘다.

"엄마, 이거 안 젖게 하려고 이렇게 들고 온 거야?"

"어~ 책도 안 젖게 한다고 이러고 왔어." 딸 앞에서 동작까지 그대로 보여줬다.

"근데 가방은 다 젖었네."

"응. 근데 엄마한테는 명품가방보다 너희 핫도그 세 개가 더 중요한 거였더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냥 핫도그 안 젖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나더라고"

"힝~~ 못살아~~."

덕분에 아이들은 행복하게 핫도그를 먹었고, 나는 젖지 않은 책을 저녁에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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