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춘기라 함은 사십 대에 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십 대가 오기 전에 올 수도 있고, 사십 대가 다 가고 오십 대 초반에 올 수도 있다. 내가 말하는 사십춘기는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오는 사춘기를 말한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청소년 시기에 반항과 방황을 하는 때이다. 그럼 사십춘기는?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의 방황이다. (다행히 부모님께 반항은 하지 않는다.)
이때까지 내가 과연 잘 살아왔는가? 누굴 위해 이리 살았는가? 나는 나로서 살았던가?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가고 어느 순간 역할로서의 나만 존재하고 있는가? 자식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부모로서, 사회적인 위치의 역할로서. 그 무수한 역할의 위치에서 나로서라는 것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방황하게 된다. 허무하고 허탈하고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는 사십춘기가 38살 여름에 왔다. 남들보다 빨랐다. 사춘기를 겪지 않고 청소년 시절을 보냈기에 사십춘기가 빠르게 온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나는 항상 바쁘게만 살았고,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겨왔었다. 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지내는 것 그것이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행복한 척, 아무 문제없는 척, 불만 하나 없는 척, 가슴에 상처하나 없는 척. 그렇게 웃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면의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의 눈동자는 호수가 되어버렸다. 하루? 이틀? 일주일? 아니. 한 달도 넘게 울컥했다. 가슴속의 응어리들은 벌써 굳어 고체가 되었고, 그것들은 용해될 수 없는 물질로 변해 버린 상태였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벌써 사십춘기가 오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치유했고, 그 누구보다 솔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며 억지로 행복한 척하지 않으며 살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사십춘기가 끝난 것은 아닐 것이다. 여자는 폐경기가 오면 신체적 뿐 아니라 심리적인 변화도 심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다행히도 나의 방황은 나를 제대로 찾으면서 아름답게 마무리되고 있는 듯하다.
<그대, 사십춘기인가요?>에서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사십춘기를 이겨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조금씩 글로 적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