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by 김화경

작년 여름쯤 나에게 사십춘기가 왔다.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했던 나에게 한 친구가 너 예전에 꿈 있었잖아. 그것에 대해 글 적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던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랬다. 꿈이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때 적었던 글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본다.


꿈이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몇 개월 전쯤, 평소와 다름없이 집 앞 산책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그날따라 오른쪽 길이 눈에 들어와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두 갈래 길이 보였다. 한쪽 길은 평평하게 나 있고 다른 한쪽 길은 높고 험하게 나 있었다. 그때 높고 험한 길 위에 누군가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고생 시절 바로 나였던 것이다.


순간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엄마는 꿈이 뭐야?”
“당연히 좋은 엄마가 되는 거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뭐야, 그건 벌써 됐잖아. 그런 거 말고. 난 디자이너가 되는 건데.”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언제부터인가 꿈을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 나는 예전부터 사람들 앞에만 서면 온몸이 떨리는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연극이 찾아왔었다. 초등학교 4학년, 주인공이 되어 무대 앞에 섰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 되었다. ‘그래, 배우가 되자!’ 처음으로 가슴에 꿈을 품은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처음 본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공연을 본 뒤, 내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고 손바닥은 핏기가 서려있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혼이 빠지게 박수를 쳐 본적이 아직도 없는 것 같다. 찰나의 순간. ‘이거다. 뮤지컬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본 여자 주인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매일매일 상상했다.

“배우가 아무나 되는 줄 아나? 밥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딱 굶어 죽기 좋다.” 엄마가 항상 한 말이었다. 굶어 죽어도 좋았다. 나에게는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2 겨울방학,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 돈이었다. 외할머니의 죽음에는 돈이 엮여 있었다. 살면서 엄마의 그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순간 내가 엄마의 말을 거스른다면 과연 버티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 후 꿈에 대한 엄마의 반대는 더욱더 완강해지셨고, 결국 나는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점집에 가자고 말이다. 당연히 하늘은 나의 편이라 생각했다. 그 길이 아니라고 하면 두말도 않고 포기할 테니 대신 그 길이 맞는다면 엄마가 포기하라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다. 내 미래를 점괘 하나로 좌지우지하게 했다는 것이. 엄마는 흔쾌히 동의했다. 점괘는 예상과 달랐다. 뮤지컬 배우를 하면 굶게 될 것이고 결국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그 길 외에 나에게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는데...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니 만족스러워하시는 표정이었다. 결국 어이없게도 나는 꿈을 포기했다.


산책길에서 마주한 높고 험한 길. 그 길 위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고생. 그 여고생을 보며 나 또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얼마나 터트리고 싶었을까.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그때 누군가가 괜찮다고 토닥거려주고 응원해 주었더라면 이렇게 상처 받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지금이라도 내가 그 아이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아이보다 내가 더 많이 울고 있었으니 말이다.


며칠 후, 다시 두 갈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고 험한 길에 어린 날의 내가 그대로 있었다.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 그 아이는 슬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울고 있는 나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괜찮으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그 아이가 나를 다독여 주었다. 나는 어릴 적 나에게 마음속으로 이야기했다.

‘비록 네가 바라던 어린 시절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새로운 도전 앞에 있어. 이젠 당당하게 내 아이에게 대답할 수 있어. 아마 너도 마음에 들 거야. 그 시절, 그 열정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거든.’


다시 꿈이 생겼다. 내 마음에 있는 것들을 글로 담아내는 것. 마음을 그리는 일. 최근 내가 글 쓴다는 것을 알게 된 딸아이는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런 게 행복 아닐까? 비록 나의 첫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또 다른 꿈이 나를 나답게 한다. 언제 딸이 다시 물어볼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이 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엄마는 말이야. 사람들의 마음을 글로 그려주고 싶어. 그림만 그리는 게 아니라 글로도 그릴 수가 있거든. 마음을 담는다면 말이지. 그래서 사람들이 엄마의 글을 읽고 따뜻해졌으면 좋겠어.”


오늘도 나는 마음을 그린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이루어야만 아름다운 꿈은 아니다. 나는 인생 사십 대에 접어들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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