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마주할 용기를 얻다
출근길, 현관을 나서다 멈칫한다. 다시 돌아와 신발장에 놓인 구두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음식을 먹고 정해진 일과를 소화하는 내과 의사 '도치성'. 그는 얼마간의 준비 후 요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의 삶의 전반은 여행을 위한 자금 준비와 신체 단련,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책장에 꽂힌 여행 책자와 같이 그 틀안에 가지런히 놓인 도치성. 단정한 책장을 침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뜬금없이 '하자'가 생긴다. 의대생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불법으로 매매했던 정자가 고등학생 '신영재'가 되어 나타난다. 작은 파문이 만든 물결이 치성을 삼키려는 파도가 되어 돌아왔다. 파도 속에 수많은 하자를 그득 품은 채.
치성의 여행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간다. 하지만 쉽사리 여행을 시작하지 못하는 치성. 그는 고민 끝에 보다 더 안전한 여행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구입하려던 요트를 49피트에서 60피트로 늘리기로 한다. 60피트의 요트를 구입하려면 더 큰 자금이 필요했고 그의 여행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
치성을 찾아온 영재는 자신에게 신체적 하자를 물려준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치성은 자신이 물려준 하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일주일 간의 '하자 가리기'에 돌입한다. 치성과 영재는 의도치 않게 다양한 상황을 함께 겪으며 서로가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지만 맞물리지 않는 톱니처럼 서로를 상처 낸다. 아슬하던 두 사람 사이에 영재의 아버지 '동석'이 등장하고 세 사람의 갈등은 더 큰 폭풍이 되어 서로를 휘감는다. 영재의 수많은 하자를 들추어 가며 자신의 하자 아님을 증명해가던 치성. 어느샌가 애써 외면하던 자신의 진짜 하자는 영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요트 세일링에는 안정이 없다. 아무리 큰 피트의 요트라도 바다 위에서는 한 조각의 낙엽일 뿐이다. 끊임 없이 밀려오는 너울과 파도에 대응해야 하고 거친 돌풍과 맞서야 하며 그 속에 가눠지지 않는 내 몸을 챙겨야 한다. 내 두 발이 딛고 있는 바닥조차 안정되지 않는 것이 요트 위다. 그 여행을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건 치성 같은 인물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가 만든 견고한 틀을 넘어서지 않는 이상 그에게 요트 항해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요트 여행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날의 지속이다. 우리의 삶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여울지고 바람인다. 때로는 바람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몸을 피하기도 하지만 바람을 피해 도망치지 않는 선택도 필요하다.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을 잘 마주하면 준비된 나의 높은 돛과 커다란 순풍이 만나 드넓은 난바다로 나를 밀어줄 것이라 믿으며.
'현실에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예감하기에, 당면한 고통을 외면한 채 삶에 대한 신비에 이끌리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언제나 매혹적인 존재다. 피로도 느끼기 전에 휴식을 필요로 하는 이런 이들을 바다가 위로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조차 한다. 대지와는 달리 바다는 인간들의 노동과 삶의 흔적들을 지니지 않는다. 어떤 것도 머물지 않으며 스치듯 지나가기에, 바다를 건너는 배들의 항적은 그 얼마나 빨리 자취를 감추던가! 이로 인해 지상의 사물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바다의 엄청난 순수성이 생겨난다.'
영화의 말미 즈음 치성의 삶과 우리의 삶을 위로하는 오래된 시, 프루스트의 '바다'가 떠올랐다.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는 4월 현재 다양한 지역의 작은 영화관과 예술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