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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Mar 24. 2022

골뱅이 보고 놀란 가슴, 달팽이 보고 놀란다

타임 특가 핫딜이 떴다.

백골뱅이 1kg에 000원.

골뱅이라곤 통조림만 먹어본 난 골뱅이가 어디서 사는 생물인지도 몰랐다. 아니, 철제 깡통 밖 어디서 사는지 아예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무슨 체험 프로그램을 보다가 갯벌에서 골뱅이를 쏙쏙 골라내는 걸 보고 바다에 사는 걸 알게 됐다.

- 통조림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요!

양동이 가득 골뱅이를 주운 출연자가 삶고 찐 다음 한입에 넣고서 한 말이었다. 쓰읍! 줍진 못하겠고 언젠가 저걸 사 먹어야겠다.


핫딜에 뜬 사진을 보고 기억 한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골뱅이에 대한 욕망이 깨어났다. 포항에서 새벽에 갓 잡아 올린 골뱅이를 직배송해준다고 했다. 손가락은 신들린 듯 결재 버튼을 눌렀다. 어제 오후, 한 보따리 장을 보고 오니 집 앞에 스티로폼 박스가 놓여 있었다. 동해바다의 골뱅이가 도착한 것이다.


1kg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손질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었다. 네가 골뱅이로구나. 비닐장갑을 끼고 달려들었다. 소금물과 맹물로 씻어 진액을 제거했다. 콧물 같은 진액(윽!) 아니, 해파리 체 같은 진액(으윽!)을 철벅철벅 건져냈다. 됐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제 이런 것도 척척 만질 줄 아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음악을 틀고 찜솥에 안쳐 25분간 쪘다. 오늘 저녁은 우리 가족이 난생처음 생골뱅이를 먹어보는 날이다.


그때 톡이 왔다.

- 저녁 약속으로 늦음 (남편)

어허, 절호의 찬스를 놓치는군. 첫째는 오늘 제대한 친구를 만난다고 나갔으니 늦게 올 테고, 둘째가 올 시간이니 같이 먹어야겠다. 찜솥의 김이 풀풀 올랐다.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갑자기 뚝 끊겼다. 보나 마나 둘째다.

둘째랑은 음악 앱의 아이디를 같이 쓰고 있다. 둘이 동시에 듣지는 못한다. 음악 듣고 싶을 땐 언제든 엄마가 듣는 걸 끊어도 된다고 합의된 사안이었다. 집에 올 시간인데 음악을 듣는다는 건 집에 안 온다는 뜻이다.

이 눔 시키, 학교 마쳤으면 빨리빨리 안 오고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문자를 보냈다.

- 언제 와?

- 야자 하잖아 쫌!

아! 맞다. 얘는 야자 하는 고3이었지? 쫌, 에 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는 건 세 살짜리도 알겠다.

- 미안. 열심히 해


갓 쪄낸 골뱅이  photo by duduni


결국 생애 첫 골뱅이는 나 혼자 먹게 생겼다. 장 본 걸 정리하다 부추가 눈에 들어왔다.

따끈한 골뱅이와 바삭한 부추전. 거기에 쏘주 한잔이면 혼자인들 어떠하리. 부추를 씻어 휘리릭 전 한판을 구웠다. 잘 쪄진 골뱅이는 돌돌 돌려 깠다. 속이 꽉 찬 골뱅이라 몇 마리만 까도 푸짐했다. 냉장고를 열어 초록병을 꺼냈다. 묵직한 게 뭔가 점성이 달랐다. 다시 보니 들기름이었다. 이것도 들기름 저것도 들기름. 소주는 없었다. 뭐 종류가 중요한가, 음식 궁합을 맞추려는 거지. 애써 위안하며 맥주를 꺼냈다.


김이 솔솔 나는 골뱅이를 초장에 콕 찍어 한입에 쏙. 시원한 맥주 한 모금 후루룩 드링킹, 깨소금 솔솔 부린 간장에 쓱 찍은 매콤한 부추전 한쪽으로 마무리.

맛있긴 한데 같이 먹는 사람이 없으니 밋밋하긴 했다. 밋밋해도 넘어가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혼밥 혼술을 야무지게 하고 식탁을 치웠다.


그릇을 넣으려는데 개수대 턱에 골뱅이 조각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이건 언제 떨어졌대? 집어서 치우려다 딱 멈췄다.

골뱅이 내장이 아니었다. 달팽이였다!

응?

달팽이가 왜? 어디서 나타난 거야?

골뱅이가 들어있는 찜솥을 한 번 노려봤다. 아니지. 골뱅이는 바다에 사는 애야. 달팽이랑 아무 상관없지.

그때 불현듯 떠올랐다.

부추를 씻을 때 작은 흙덩이가 붙어 있어 떼어냈던 게 생각난 거다. 흙덩이가 아니라 달팽이였구나.


손톱만 한 달팽이   photo by duduni


한참 달팽이를 쳐다봤다. 내가 혼밥 혼술을 할 때, 이 손톱만큼 작은 달팽이는 죽을힘을 다해 개수대에서 턱까지 올라왔겠구나. 이 갸륵한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달팽이는 내가 보고 있는 걸 아는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얇은 플라스틱 뚜껑에 달팽이를 얹어 앞 베란다로 갔다. 창문을 여니 10층 아래에 화단이 보였다.

넓은 세상에 가서 잘 살아라.  

달팽이는 기다렸다는 듯 톡 떨어졌다.


골뱅이인 줄 알았는데 달팽이라.

의외의 만남이 엉뚱한 조합이 되기도 한다.

내가 주목한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넓은 세상을 살게 될 달팽이처럼 시야를 넓혀보면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목련을 찍었는데 구름 속 낮달을 발견한 것처럼.

매화가 핀 줄 알고 다가갔는데 일찍 피어난 벚꽃을 발견한 것처럼.


목련과 낮달  photo by duduni


올해 처음 핀 벚꽃! 황홀하다!   photo by dud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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