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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Jan 18. 2022

오늘 저녁은 붕어빵 세 마리

우리 식구 중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제일 많은 사람은 나다. 사다 놓은 간식을 제일 많이 보는 사람도 나다. 보면 먹는 게 당연지사. 먹고 찌고 기분 나쁘고, 삼박자가 딱딱 맞다. 아예 사놓지를 말자. 간식을 없앴다. 가족들은 때때로 주전부리를 찾았다.

"뭐 먹을 거 없어?"

"없어!"

안 먹다 보니 찾는 횟수도 줄었다. 그랬다, 난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지성적인 인간이었다.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기 시작하자 지성적인 나의 뇌리에 한 가지 형상이 자꾸 떠올랐다.

노릇노릇 갓 구운 붕. 어. 빵.


익히 잘 아는, 알아서 더 생각나는 붕어빵만의 아이덴티티가 내 안으로 몰아쳐 들어왔다.

뜨거운 틀에서 탄생하여 쇠 망 위에 켜켜이 놓인 채 천막을 휘돌아가는 바람에 황급히 겉껍질이 마른다. 하얀 종이봉투에 서걱서걱 안착한다. 몸을 맞댄 붕어빵들의 열기가 종이 한 장을 거쳐 손으로 전해진다. 한 마리를 꺼낸다. 김이 솔솔 난다. 아이덴티티의 핵심인 시린 겨울 공기가 붕어빵을 감싸고 지나간다. 겉의 온도가 한층 떨어진다. 붕어빵은 여전히 패기에 차있다. 이와 이를 이용해 금빛 주둥이를 베어 문다. 바삭, 소리와 함께 붕어빵은 모든 걸 내려놓는 듯하다. 달콤한 속이 노출되자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맛보고 싶어 욕심을 부린다. 붕어빵은 들끓었던 열로 응축된 팥소로 최후의 한 방을 날리고 장렬히 전사한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붕어빵의 뜨거운 복수를 쉽사리 식히진 못한다. 혀가 까진다.


붕어빵을 향한 강한 욕망은 간식을 절제한 탈인간적이고 고차원적인 자제력이 낳은 보상심리임이 분명했다.

꼭 먹어야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붕세권이 아니다. 지난 수년의 겨울날, 붕어빵을 사 먹었던 세 곳을 떠올렸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었다. 차를 몰고 나갔다. 오직 붕어빵을 위해. 곧 따끈한 붕어빵을 먹을 수 있겠지. 침이 고였다. 기대는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어찌 된 일인지 붕어빵 천막들이 죄다 없어졌다. 이상하다.


네 블록에 걸쳐 대로변에 있던 붕어빵 집들이 흔적도 없었다. 재료값이 올라서? 마진이 안 남나? 코로나라서? 그 많던 붕어빵집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포기할 순 없었다. 시장 일대의 골목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열망은 집착으로 바뀌었다.

내 반드시 붕어빵집을 찾고야 말겠다!

장 볼 때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차를 보면 째려보곤 했는데 내가 그런 민폐 차를 몰고 들어간 거다. 차와 사람을 피해 가며 김이 피어오르는 곳이면 쌍심지를 켜고 품목을 살폈다. 어묵, 호떡은 있는데 붕어빵은 없었다.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어 시장을 빠져나왔다. 자포자기하며 골목을 지나가는데, 있다! 붕어빵집이다! 올레!


차를 세워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았다. 위치를 알았으니 어디라도 세우고 가면 된다. 붕어빵이야 구워 놓은 걸 금방 담아오면 되니까. 겨우 애매하게 빈자리를 찾아 개구리 주차를 해 두고 신나게 달렸다.

"붕어빵 이천 원어치 주세요!"

"예, 금방 나옵니다."

아저씨는 반죽을 붓고 팥소를 올리고 있었다. 주차가 신경 쓰였다. 금방 담아갈 줄 알았는데... 쌍 깜빡이를 켜 두긴 했는데... 빨리 가야 하는데...

아저씨는 붕어의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팥소를 올렸다. 이제껏 내가 본 가장 느린 손놀림이었다. 금방 안될 거 같은데? 한 마리 반죽 올리고 옆에 붕어 틀 열고 똑같이 반복. 장사를 올해 처음 하시나? 틀은 동그랗게 돌아가며 여덟 칸쯤 있었다. 이렇게 속도가 느려서 언제 받아가지?

때마침 천막 맞은편에 주차했던 차가 휙 빠져나갔다. 내 차를 저 빈자리에 넣어 말어? 안 되겠다. 독촉해야겠다.

"저.... 이천 원어치만 살 건데 먼저 된 거 주시면 안 되나요?"

"다 익어야지. 이거 한 바퀴 다 돌고 꺼내면 돼요."

"아, 예...."

내 속이 타건 말건 아저씨는 평정심이 깃든 속도로 다섯 번째 붕어의 팥소를 올렸다.  

십 분은 기다린 것 같다. 현타가 왔다. 나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정말이지 승질 급한 사람 도 닦는 데 최적화된 장소였다.


마침내 대망의 붕어빵을 받아 들었을 때는 겨울 공기고 뭐고, 아이덴티티고 뭐고 없었다. 얼른 뛰어가서 차를 빼야 한다는 것 말고는.

집으로 가는 길,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붕어빵 봉투를 열었다. 한 김 식은 붕어라 패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남아 있었다. 봉투를 열어 바삭한 패기를 오래 유지시켜야 한다. 밑에 깔린 붕어가 눅눅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봉투를 찢어 붕어 다섯 마리를 흩어놓았다. 다 이루었다. 이제 영접할 시간이다.


올해 첫 붕어빵을 베어 물었다. 바삭!

이거지! 이거!

크으! 보람 있구만.
신호가 바뀌었다. 붕어빵을 물고 액셀을 밟았다. 쭉쭉 나가다 갑자기 앞 차가 섰다. 나도 섰다. 붕어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관성의 법칙이지, 아마? 조수석 바닥에 낙하했다. 어떻게 산 붕언데. 3초 만에 주울 수도 없는데. 앞차는 다시 출발했고 나도 출발했다. 낙하한 붕어는 바닥에서 식어갔다.


차에서 두 마리를 클리어했다. 도착해서 먼지 털고 먹은 세 마리째 붕어도 맛있었다. 그 귀한 걸 어떻게 버리겠나. 헤집어 놓은 덕에 세 마리 다 바삭했다. 남은 두 마리는 일찍 집에 오는 운수 좋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겠지. 다섯 마리를 다 먹기엔 의 지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붕어빵 세 마리에 마음이 불렀다. 오늘 저녁은 이걸로 때우련다. 배보다 마음을 채운 저녁이었다.

(이렇게 맺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련만...)


여기, 짚고 넘어가야 할 두 가지 진리가 있다.

1) 보나 마나 야식 먹는다. 마음은 배보다 빨리 꺼지므로.

2) 간식은 또 다른 간식을 부른다. 간식은 밥이 될 수 없다. 간식 먹으려고 밥 적게 먹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고로 밥때 되면 밥을 충실히 먹자.


이웃님들, 밥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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