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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Dec 16. 2020

존재 자체로 소중한 나

생일이 되면 친정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생일 며칠 전부터 약속 시간을 정하고 맛집을 꼼꼼히 알아본 후 식당을 예약했다. 약속 장소에 나타난 부모님은 약속을 잡는 그 날부터 이 시간이 기다려졌노라고 좋아하셨다.


내일 생일을 맞아 올해는 외식이 꺼려지니만큼 포장 주문을 해서 가겠다고 엄마께 톡을 넣었다.

엄마는 지금 대확산 시기라 조심하는 게 좋다며 오지 말라 하신다. 엄마 아빠는 오며 가며 잡사람 다 만나니 가까이 안 오는 게 좋다 하신다. '잡사람'이란 말이 웃겨 'ㅋㅋㅋ'를 보냈다.

 

우리 집에 수험생이 있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최근 몇 달간 마스크 벗은 얼굴로 만난 적이 한번도 없다. 불시에 국이며 반찬을 해 오셨다며 아파트 밑에 내려와 받아가라 하실 때도 잠깐 얼굴 보는 게 다였다. 이제 웬만한 대입과정이 다 끝나서 만나도 되지 않나 했지만 천 명을 웃도는 숫자에 멈칫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가 무서운 진짜 이유가 이거구나. 가족끼리도 제대로 만날 수 없으니. 오랜 거리두기에 지치기도 했지만 방법이 이것뿐이니 할 수 없다. 좀 더 견디는 수밖에.


나의 친정은 같은 지역으로 차로 20분이면 닿는 곳에 있다. 가까이 있어도 친정은 언제나 애틋하다.

가면 그저 좋다. 아침에 구운 고등어 냄새가 집안 가득 배어있어도 좋다. 엄마 아빠가 여전히 투닥거리는 것도 좋다. 엄마가 해준 건 어떤 음식도 다 맛있다.

내가 무얼 하건 어떤 이야기를 하건 다 이해해 주신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신다. 누구보다 공감하고 걱정해 주신다. 그 무조건적인 '품'이 좋다. 이 세상에서 나를 존재 자체로 받아주는 유일한 이가 부모님 아닐까.


사람에게는 어리광 부릴 곳이 필요한 걸까.

어른 행세하기가 힘이 든 걸까.

세월이 묻은 외모 안에 깃든 어린아이가 기지개를 켜는 걸까.

나는 어릴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을 지내왔으니 어른이라 부르는구나.


친정에서는 길어봐야 몇 시간 머물다 오는 게 전부다. 엄마는 차 트렁크에 뭐 하나라도 실어 보낸다. 사실 거의 양 손 한가득 싣고 온다. 트렁크에는 먹을거리가 가득이고, 내 마음에는 온기가 가득이다. 그 따스하고 벅찬 온기는 친정을 나서서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를 충만히 채우고 있다. 마치 꿈같은 기분이다. 집에 오면 바로 현실로 복귀한다.  

<Rain. 4PM> oil on canvas. by duduni


이 그림은 친정에서 우리 집으로 오는 길을 담고 있다. Rain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볼 때면 마음이 따사로워진다. 세차게 내리는 비가 차 창문을 때리지만 내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 마음은 온통 따스한 햇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도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 좋겠다.

이 그림을 보는 당신도 그림에서 그런 따스함을 발견하기를.

당신을 무조건 품어주는 너른 품의 온기를 느끼기를.

존재 자체로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이를 떠올리기를.


https://youtu.be/eMUdckSNBvI

<she>

나의 최애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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