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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Dec 29. 2020

똥존심이라도있어야지.

  

<찰나>  oil on canvas. by duduni

  

찰나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다.


차를 타고 갈 때면 창밖 풍경으로 자연히 눈이 간다. 주로 먼 풍경에 마음이 머물지만 가끔 차 가까이 있는 가로수에 시선이 뺏길 때도 있다.

나뭇잎 사이를 통과한 빛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하늘은 그 배경이 된다. 휙휙 속도감 있게 지나가며 뭉개져 보이는 나무들이 그림처럼 보인다.

다양한 채도와 명도의 초록은 속도에 묻혀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흩뿌려진 덩어리 사이에 태양 빛의 끄트머리가 빛난다. 따뜻하고 선명한 주홍색이 나뭇잎 끝을 경쾌하게 물들인다.


그 느낌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으면 모든 형태는 따귀를 맞은 듯 휘갈겨진 느낌이다.

건질 사진이 없네? 하다가, 문득 아! 이거다, 싶다.

이 휘날리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보자. 그래서 그린 그림이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재미있었다. 쉽게 휘릭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느낌을 살리려니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냥 붓으로 휘갈겨 그리고 싶었지만 하나하나 섬세한 터치가 들어가야 했다.


작업 중 이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입을 댔다. 어지러워서 못 쳐다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리는 나야 그림 자체에 매몰되어 있어 몰랐지만 지금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건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린다는 주의였다. 그러고 보면 그림을 그리는 내내 나에겐 똥존심이 있었다. 내 작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 확고함이 어디에서 유래된 건지는 모르겠다. 어디에서도 검증받은 적이 없는 그림 실력인데도 내 그림에 당당했다. 그 그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똥존심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존심 세우고 살기에 녹록지 않은 세상. 똥존심이라도 있어야 버텨내지 않을까?

꺾이고 꺾여도 다시 빳빳이 고개를 드는 똥존심이 있어 다행이다. 기죽지 않는 게 아니라, 기가 죽어도 구겨진 기를 손으로 꾹꾹 눌러 다시 펼치는 것이다. 구겨진 주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더라도 다시 펼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나를 위로하고 사사로운 것도 칭찬하며 북돋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 너 지금 잘하고 있다. '고...       



https://youtu.be/UHPJZF3pBhk    

<Audition>

영화 라라랜드에서 엠마스톤이 부르는 OST다.

이 장면에서 오열했었지.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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