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지러울 땐 산책이다.

by 두두니

역시, 마음이 어지러울 땐 산책이 제일이다.

추위 탓, 미세먼지 탓, 코로나 탓, 일찍 지는 해를 탓하며 한 달 정도 산책을 하지 않았다. 몸이 찌뿌둥하고 마음은 더욱 산란해졌다. 몸의 기가 꽉 막힌 듯 가슴이 답답했다. 마음이 말을 걸었다.

나가 걸어라, 쫌!


해질 시간을 딱 한 시간 남겨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공기가 좀 통하는 덴탈 마스크를 끼고 길을 걷는다. 오랜만에 신는 운동화 굽 때문일까? 키가 좀 커진 듯 느껴진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데, 몸이 무척 가볍다. 아니, 마음이 가볍다.

못 만났던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하는 기분이다.

바람도 차지 않고 공기도 깨끗하다.


집 앞 공원을 지나간다. 끼리끼리 모여 담배를 물고 화투를 치는 할아버지들이 안 보여서 좋다. 공공장소에서 담배 연기를 피워대는 건 내가 제일 극혐 하는 일 중 하나다.

편도 5차선을 끼고 있는 다리를 건넌다. 매연 속을 걷는 것 역시 싫어하는 코스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산책길이다. 오로지 그 희망 하나로 긴 다리를 건넌다.


드디어 강변 산책길이다. 내가 오지 못했던 한 달 사이에 자전거 도로는 새로 정비가 되어 있다. 들판은 더벅머리를 민 듯 휑하게 정리되어 있다. 강물 가장자리는 얼어있고 펼쳐진 풍경은 무채색으로 변했다. 산책로에는 늘 그렇듯 걷는 사람들이 있다.


빼액 빼액.

반가운 소리에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철새들이 와 있다!


너희들 왔구나! 반갑다!


내 동화의 뮤즈가 되어주었던 청둥오리들이 떠 있다. 그 고운 청록빛 머리를 물속으로 참방참방 집어넣으며 먹이 사냥을 한다. 두 마리가 박자를 맞추어 같이 움직인다. 머리를 담그면 저절로 귀여운 꽁무니가 둥둥 들어 올려진다. 어떤 녀석은 포르르 날다가 슬라이딩하듯 물결 위에 내려앉는다.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부드럽다.

멀리, 기다란 목을 쭉 빼고 우아하게 서 있는 큰 녀석이 보인다. 쇠백로다.

오리들 옆에 있으니 더 커 보인다. 이곳에서 백로는 거의 텃새화 되어 사시사철 볼 수 있지만 저리 도도한 자태는 오랜만이다.


철새들을 보니 겨울이 깊어졌다는 것이 실감 난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틈에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공기를 들이켠다. 물 냄새, 마른풀 냄새, 찬 바람 냄새, 시린 겨울 냄새.

마음이 편안해진다.

헝클어져 삐죽삐죽 돋아나던 심보가 스르르 가라앉는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만드는 선이 예쁘다. 산 너머로 넘어가는 노을이 아름답다. 반짝이는 물결 위에서 노래하는 새들의 소리가 정겹다. 싸한 공기와 뻥 뚫린 하늘이 시원하다.


걷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오랜만의 산책이라 더 좋다.

이 좋은 걸 잊고 있었구나.

다시 찾은 산책의 시간, 잃지 말아야지. 잊지 말아야지. 놓치지 말아야지.

올해의 첫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