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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Jan 12. 2021

직접 당해보고야 알았습니다.

대입 원서 접수기

어제 아이의 대입 원서를 써 보고야 알았습니다.

사람은 참 적응의 동물이구나. 인생은 참 상대적이구나. 뭐든 직접 당해봐야 아는구나.


입시 설명회도 듣고, 각종 자료를 찾기도 해 봤지만 저처럼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대입을 미리 체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좀처럼 내 일처럼 와 닿지가 않았던 거죠. 예시를 들어 설명하는 대학들이 제 아이와는 한참 떨어져 있는 듯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수시 논술 원서를 쓸 때였습니다. 글쎄요. 다른 아이들 상황은 잘 몰라 적절한 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논술은 자기 점수보다 죄다 상향을 해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학교가 다 논술 시험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수능을 치르고 나서 자신의 점수를 '가늠'한 후에 논술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수능 점수는 그 이후에 발표되기 때문이지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했어요. 뭘 이렇게 번거롭고 어렵게 만들어 놨는지...


점수가 확실하지 않았던 아이는 일단 가능한 논술을 다 쳤습니다. 치고 나서는 생각보다 꽤 잘 친 것 같다며 기분이 업되었지요. 우리 가족들도 덩달아 기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수능 성적이 발표가 됐어요. 학교에 가서 성적표를 받아왔습니다.


아이는 성적표를 소파에 올려두고는 방으로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방 베란다에 쌓아 둔 상자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엄마, 죄송합니다.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 말을 내뱉는 심정이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논술 시험을 잘 쳤기에 기대가 커졌고, 그만큼 아이의 실망도 더 커졌던 가 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고요.

괜찮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성적에 맞춰서 갈 수 있는 곳에 가면 된다고 다독였습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과연 사람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는 금세 적응이 되었으니까요. 아이의 성적에, 논술을 아무리 잘 쳤어도 수능 최저를 맞출 수 없음에, 다시 마음을 재정비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현실에 말이죠.

이런 저를 닮았는지 몇 분 후 아이도 애써 밝은 얼굴로 말하더군요.

맞춰서 쓰고, 거기 가서 열심히 하면 되지 뭐, 그럼 되겠죠?
그럼.


그리고 어제 정시 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정시로 대학을 가는 건 수시보다 많이 불리하더군요. 한참 점수가 낮은 대학과 학과에 가능한 정도였어요. 직접 당해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수험생 부모님들, 어떻게든 수시로 가세요.)


정시 원서 쓰는 건 또 얼마나 어렵던지요. 정시라는 건 등수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자신과 비슷한 점수대를 비교 분석해서 써야 했습니다. 며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어요.(학교, 시 교육청, 구청 진학상담실, 재수학원, 진학사  분석 시스템 모두 신청해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진학사'의 유료 분석이 가장 정확했습니다._표본수가 많음)

그리고 어제 접수가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습니다.

이제는 발표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거든요.


지금은 어떤 심정이냐고요? 한참 낮든 어떻든 원서를 쓴 그 학교 학과에 붙기만을 바란답니다. 논술 원서를 썼던 상위 학교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지금 중요한 건 내 아이가 쓴 과의 모집 정원 안에 드느냐, 마느냐입니다. 이 얼마나 상대적입니까?

 

아이 원서를 쓰면서 참으로 많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살아보면 대학이 뭐 그리 중요하더냐, 하실 수도 있지만 수험생과 가족에겐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릅니다. 이 또한 상대적이지요.

시간이 흘러 이런 것이 아무것도 아닌 때가 되면 그때는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겠지요.  


우리나라의 대학입시가 참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보를 어느 만큼 아는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 과연 옳은 제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찌 됐든 원서를 한 번 써 보고 나서야 돌아가는 판이 보이는 지경이니 말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대입 원서 접수기간이었습니다.

올해 수험생과 그 가족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능 전, 아들에게 전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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