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Jun 29. 2021

알바 자리를 구하는 참신한 방법

사회생활에 발 담그기_1

나는 오랜 시간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돌아보니 단절 전 어떤 경력이 있었는지도 가물거릴 만큼 세월이 지나 있었다.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육아서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보들을 수집해 이것저것 시도하며 육아에 몰두했었다.


유기농 재료로 손수 해 먹이고, 잠수네, 푸름이네... 업계 유명한 집안의 육아법을 두루 섭렵했다. 내 상황에 맞는 걸 골라 따라 해 보니 성공 사례를 만들려면 뭐든 꾸준하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조금 하다 흐지부지, 먼저 지쳐 그냥저냥. 책을 많이 읽어준 것 외에는 끝까지 완주한 게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엄마표 공부로 이어나갔다. 그렇게 나름 애를 썼고 다행히 아이들은 잘 따라왔다.


아이들 학교에선 학모 모임이 만들어졌다. 애들하고만 지내다 또래 어른들과 대화를 하니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큰애가 있는 집 엄마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주워듣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지루하고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못 느낀 척 지나갔다.


큰 아이 첫영성체를 계기로 성당 엄마들과의 모임도 생겼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보다 풍성하고 깊은 대화가 오갔다. 유머 코드도 비슷해 만날 때마다 웃느라 배를 잡았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올 때면 내 안의 무언가가 또 꿈틀거렸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


아이들이 중학생, 초등 고학년이 되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주위 엄마들이 하나둘 일을 시작한 거다. 학원비라도 벌고자 사회로 발을 내디딘 거다. 기의식이 나를 덮쳐왔다. 다시 일을 시작한 그들은 꿈틀댔던 그 무엇을 끄집어낸 사람들이었다. 그 용기가 부러웠다.


아이들은 이제 손 가지 않을 만큼 컸고 앞으로 들어갈 돈이 많은 건 명백했다. 표면적으로는 돈이었지만 그녀들에게도 내게도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쓰임있다는 것,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 내어 내 가치를 입증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일이어야 했다. 내가 만드는 그림과 글은 돈이 되지 않았다. 남들 보기엔 '그냥 하는 거'에 불과했다. 기를 쓰고 했지만 그저 취미나 뻘짓으로 치부되었고, '돈'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도 당당하지 못했다. 많지는 않더라도 가시적이고 수치화된 결과가 나오는, 돈 되는 ‘’이 필요했다.




성당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한 언니가 다음 주부터 못 나온다고 선포했다. 일을 하게 되었단다. 또 다른 언니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은 탓에 모임 시간에 조금 늦을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해온 터였다.

조급해졌다. 꿈틀대던 진동이 점점 더 커졌다.

'다들 능력자네. 나도 뭔가 해야 하는데...’


점심 식사 후 다 같이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중년의 카페 주인이 밝은 얼굴로 맞이했다. 카페는 동네에 있는 것 치고 규모가 꽤 컸다. 내부는 조용하고 편안하고 풍스러운 분위기였다.


그 카페는 아니지만... by duduni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한 모금 머금었다. 커피는 한 모금이면 바로 판단이 내려진다. 다시 올 카페인지 오늘로 끝일지. 진한 향이 올라왔다.

커피 맛있다!”

커피에 있어선 지극히 까다로운 내 입맛에 꼭 맞았다.


"이 집 괜찮네. 어떻게 이런 델 몰랐지?"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카페 품평을 하자 주인장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커피 맛 괜찮아요? 다행이다. 오늘 내 맘대로 커피가 잘 안 나와서 커피값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이 말이 무척 인상적으로 들렸다. 우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카페 주인과 이 말 저 말을 주고받았다. 오지랖이 오대양인 언니들은 같이 이야기 나누자며 카페 주인에게 자리를 권했다. 주인의 커피 철학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 주인도 심심했던지 합석을 하게 되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는 귀는 열어둔 채 눈으로 연신 카페를 둘러보았다. 이런 데서 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오랜 시간 꿈틀대던 그 무엇이 불시에 불뚝 튀어나왔다! 그건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무모하고도 용감한 돈키호테였다. 나는 배시시 웃는 얼굴을 장착하고서 카페 주인에게 선뜻 말을 건넸다.

카페가 큰데 혼자 운영하세요? 알바는 안 구하세요? 혹시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카페 주인은 조금 당황하는 듯했다. 난데없는 알바 제안에 당황할 만도 하지. 난 냅킨에다 연락처를 적어 건넸고 그녀는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보고 있던 언니들은 옳다구나, 하며 한 마디씩 지원사격을 했다.

“얘, 알바하면 잘할 거예요. 일 했다 하면 똑 부러지게 하거든요.

다들 대사라도 외운 양 신나게 둘러댔다. 뜬금없는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솜사탕 기계에서 솜사탕이 부풀 듯 이야기는 점점 부풀었다.  

워낙에 감각이 있거든요. 아, 저번에 바리스타 자격증(학부모 무료강좌에서 취득한)도 땄잖아? 맞지? 알바로 쓰시면 완전 땡잡으시는 거예요.”


여기저기서 뿌려대는 양념 속에서 나는 또 그걸 즐겼다. 즉석 연극 공연을 펼치는 기분이었다. 급조된 온갖 찬사 속에서 카페 주인은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난 은은한 미소를 띠우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나의 돈키호테가 이렇게 뻔뻔할 줄이야.

짓궂기 짝이 없는 이 작은 에피소드는 까르르 웃음과 함께 지나갔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뽑아주는 데가 있을까?

내가 다시 뭐라도 할 수 있기는 할까?'


두 주가 지난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희 카페에서 알바하실 생각 아직도 있으세요?


그렇게 40대 전업주부는 결혼 후 첫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먼저 찜한 다음 무턱대고 들이대서 구한 알바였다.

이 정도면 꽤 참신하지 않은가?



몇 년전 이 첫 알바를 시작으로 사회생활에 발 담근 이야기를 이어할까 합니다.

(지금 알바 중 아님. 주의^^) 

water color on paper .  by dudun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