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두니 Jul 19. 2021

장단점 리스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발 담그기_2

https://brunch.co.kr/@dew1217/4

<위 글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ㅡ저희 카페에서 알바하실 생각 아직도 있으세요?
ㅡ그럼요!

사장님은 카페에 와서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난 전화를 끊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카페에 갔다. 면접인 셈이었다.


사장님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카페를 운영한 지는 6개월 되었다고 했다. 혼자 하다 보니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단다. 아직 초기라 월세 내기에도 빠듯해 알바를 쓰기엔 부담스럽지만 여유를 갖고 싶은 것도 사실이라고. 그런 와중에 내가 알바 제안을 했고, 그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일단 세 달 정도 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세 달이라는 기간을 정해두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도 나의 상황을 말했다. 전업주부로 지냈고 결혼 후 사회 경험은 처음이라고. 카페 일도 처음이지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건을 달았다. 알바하는 사람이 조건을 다는 게 흔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거절할 생각이었다. 아이들 하교 시간 전에 일을 마치고 싶고, 주말에는 못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근무시간이 정해졌다. 월~금요일 10시~ 3시까지. 지금 되돌아보면 좀 어이가 없다. 제일 바쁠 수도 있는 주말엔 일을 안 하고, 여유로운 오전 시간을 포함한 근무시간이라니. 이 조건을 받아 준 사장님이 신기할 따름이다.


다음날부터 근무가 시작되었다. 출근을 하면 전원을 다 켜고 가게 문 열고 환기, 포스기 켜고, 음악을 틀었다. 사장님은 커피를 두 잔 내리더니 창가 자리에 앉자고 했다. 둘이 마주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난 마음이 급했다. 당장 커피 메뉴를 만들 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드립 커피는 10년을 내려 마신 경력이 있고 바리스타 자격증도 드립 커피로 받은 것이었지만 다른 메뉴는 생소했다.  

사장님에게 메뉴에 대해 물어가며 종이에 메모를 했다. 캬라멜 마끼아또는 에스프레소 2샷, 우유 거품 00ml, 캬라멜 시럽 2....  이런 식으로 메모를 했다. 커피 머신 다루는 법, 포스기 사용법도 하나하나 익혔다. 생과일주스에 쓰일 과일 비율을 가늠하고 다른 재료의 재고도 살펴봤다.


손님이 왔다.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외쳤다. 도레미파'솔' 음에 맞춰 목소리를 냈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목소리가 무척 어색했다.

사장님이 주문받고 메뉴 만들고 음료 내가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테이블 밑에 숨겨둔 A4 한 장 짜리 레시피 메모를 잽싸게 컨닝한 다음 입으로 읊어가며 만들었다. 한 번에 하나둘 정도만 주문이 들어오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집에서 모카포트로 만든 아이스라떼. ㅡ눈으로라도 시원하시길....,      by duduni


그다지 붐비지 않는 카페지만 한꺼번에 단체 손님이 올 때가 있었다. 그동안 사장님 혼자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둘이 왔다 갔다 하며 후루룩 만들어 갖다 내고 나면 마주 보고 씩 웃었다. 무사히 처리했다는 안도의 웃음이었다.


며칠 지나자 일이 몸에 익었다. 손님맞이 인사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사장님은 볼일을 보러 나가기 시작했다.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분이라 다른 카페에 견학차 가기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도입하기 위해 알아보러 가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자리를 비우고 처음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불안하던지. 하필 그럴 때 대형 단체손님이 들이닥칠 게 뭔지.


여덟 명이 우르르 들어와 각기 다 따로 메뉴를 시켰다. 음료가 좀 늦게 나가더라도 양해 바란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자! 집중해야 한다!

카페모카 아이스, 키위 주스, 아포가토, 오레오 000, 와플 세트.... 가장 평범한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손님이 천사로 보였다.  

먼저 우선순위를 정했다. 먼저 내어 갈 것과 식으면 안 되는 것. 내 인생에 그토록 집중했을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초집중 상태로 메뉴를 만들었다. 4개를 먼저 만들어 갖다 내고, 또 4개를 만들었다. 사이드 메뉴까지 너무 늦지 않게 만들어 내어 드렸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손님들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난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를 정리했다. 그렇게 한숨 돌리고 있을 때 사장님이 왔다. 눈이 동그래진 채로 다가와 속삭였다.

"혼자 어떻게 다 했어요? 전화해서 나 부르지."

전화할 틈도 없었거니와 볼일 보러 나간 사람을 부르는 건 생각도 안 한 일이었다.

"하니까 하겠던데요?"

내심 뿌듯해하며 쿨하게 대답했다. 혼자서 실수 없이 치르고 나니 자신감이 좀 생겼다.

by duduni

경험이 늘어나는 만큼 내 마음에도 점점 여유가 생겼다. 손님들에게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했다. 자주 찾아오는 단골손님의 얼굴도 눈에 익었다. 그들에게는 더 살갑게 인사를 했다. 정성 들여 메뉴를 만들고 웃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커피가 맛있다며 한마디 건네거나 메뉴나 날씨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붙이는 손님도 있었다. 친근감을 느끼면 말문이 트이는 법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접하면서 일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도 일은 일인지라 아침이면 출근할 생각에 몸이 배배 꼬였다. 출근이란 것이 막상 하면 괜찮은데 하기 전까지가 문제다. 그렇게 가기가 싫은 거다. 준비를 다 마쳤어도 어떻게든 소파에 앉아 밍기적거렸다. 버스 올 시간에 거의 딱 맞춰서 겨우 집을 나섰다.


카페는 빠른 걸음으로 20분 되는 거리에 있었다. 첫날은 걸어갔었는데 오르막길이라 진이 빠졌다. 다음날부터는 출근 땐 4코스를 버스로 이동했고 퇴근 땐 걸어왔다. 5월, 한창 싱그러울 계절이라 집에 돌아올 때면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3시, 일을 마치고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설 때면 사장님이 왠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뒷일을 다 남겨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쥐가 고양이 걱정은...). 매일 카페에서 일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볼일을 보러 나간 사장님이 3시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하자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사장님은 30분을 훌쩍 넘어서 왔고 내일 30분 일찍 퇴근하라고 했다.

며칠 후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엔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이다. 그날은 내가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1시간이 지나 사장님이 헐레벌떡 왔다. 난 약속 장소로 급히 가느라 서둘러야 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늘상 있는 일이 아니니 뭐라 하기도 곤란했다. 그저 속으로만 구시렁거릴 수밖에.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이 카페의 단점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그 첫 번째 항목이 작성되었다.

시간 약속에 철저하지 않음.

그렇게 카페 알바를 하며 단점 리스트가 생기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바 자리를 구하는 참신한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