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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Jul 28. 2021

알바 3개월의 막을 내리다

사회생활에 발 담그기_3

https://brunch.co.kr/@dew1217/74

<위 글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알바를 시작한 다음 날부터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일하는 친구가 처음이다 보니 격려차, 구경차 온 것이었다. 친구들은 카운터와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이 없을 때면 나도 잠깐씩 같이 담소를 나누었다. 그래도 일을 하는 입장이기에 마냥 편하게 놀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내 공간에 와서 이야기하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내가 만든 커피와 메뉴를 맛있게 먹는 것도 좋았다.

"네가 카페 주인 같다."

푸하하 웃었지만, 그때 나는 정말 주인 된 마음으로 임했다.

마치 내가 카페를 차린 것처럼.

내 카페에 내 친구들이 오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찾아온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근처에 사는 친구들은 오며 가며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갔다. 모임 하는 친구들은 모임 자체를 우리 카페에서 하기도 했다. 아침 오픈하자마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러 오는 친구 M도 있었다. 동화 모임의 멤버들은 조용히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 가기도 했다. 내 동생도 들러 학부모 참관하듯 매의 눈으로 카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갔다. 각기 다른 친구들이 동시에 찾아와 서로를 소개시켜 준 적도 있었다. 마침 카페 근처에서 다른 알바를 하던 T언니는 일이 끝나면 출석도장 찍듯이 머물다 갔다.


사교성이 출중한 편도 아닌데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 걸 생각해보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인복이 많다.  

어찌 됐든 내가 일한 동안 카페 매출의 1/4은 내 친구들이 올렸을 거다.


T언니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솜씨가 있었다. 당시에는 쿠키 만들기에 꽂혀 있을 때였다. 넉살 좋은 언니와 친해진 사장님은 T언니가 직접 구운 쿠키 맛을 보고 카페에서 판매하게 되었다.

친구 M은 맛있는 코코아와 견과류를 찾았다며 내게 선물한다고 들고 왔다. 그 코코아를 맛 본 사장님은 카페 코코아 메뉴에 그 제품을 쓰고, 와플 메뉴나 아이스크림에 곁들이는 견과류로 역시 그 제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카페에 갔다가 알루미늄 티백에 나오는 차 맛이 괜찮아 사진을 찍어 두었다. 다음 날 사장님에게 그 차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했다. 차는 당장 카페 차 메뉴로 판매되었다.


카페의 장점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 친구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 맛 좋은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 내 의견을 잘 반영해 준다.


사장님은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새로 뽑은 알바가 무수한 경험으로 인터넷 쇼핑에 도가 텄다는 걸 알게 된 후, 사장님은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쇼핑 욕구를 발산했다. 이것저것 인터넷으로 주문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금은 눈도 침침하고 귀찮아서라도 잘 안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일이야 식은 죽먹기였다.

수동 우유 거품기, 빙수 얼리는 통, 차 종류 등 척하면 착 주문을 했다.


카페에서 유일하게 분리되어 있는 룸 공간이 한 군데 있었다. 단체 손님들이 많이 찾는 자리였다. 독립된 공간이기에 그 방만 다른 분위기로 연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께 의견을 말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마음에 들어 했다.

직장 다닐 때, 휑한 사무실 공간을 따뜻한 분위기로 바꾸는 작업을 서너 번 해 본 경험이 있었다. 거기다 한창 집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많을 때였다. 전체 분위기를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휴식.  by duduni


패브릭과 그림, 식물이었다. 커튼이나 테이블 보, 벽 장식 그림을 바꾸고 초록 식물만 놓아도 공간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인터넷으로 카페에 어울리는 심플하고 코지한 분위기의 천을 고르고, 벽에 있는 이상한 그림 위에 새 캔버스 천을 덧씌우고 말린 나뭇가지나 풀 다발을 거는 킨포크 스타일을 시도하기로 했다. 모든 걸 다 골라 주문했고 제품이 도착했다.


그런데 제품들을 그대로 두는 거다. 설치하지 않을 거냐고 물으니, 딸한테 말했더니 그런 거 별로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헐~


단점 리스트가 작성됐다.

- 귀가 얇다.
- 딸한테 약하다.
- 노력한 만큼 보람이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장점과 단점에 나란히 들어있는 항목.

내 의견을 잘 반영해 준다  VS  귀가 얇다

따지고 보면 같은 말이다.

좋게 보면 의견 수용에 유연하다는 장점이고,  나쁘게 보면 귀가 얇아 줏대가 없다는 단점이다. 하나의 특성이 관점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어떤 일이든 극단적인 건 위험하다는 반증이다. 나의 관점이 어디로 쏠려있는지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다른 일을 한다던 딸이 한 번씩 카페에 나와 일을 도왔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있으니 카페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언니라 부르며 잘 따르고 손도 빨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니 일하기가 편했다. 반면 약간 느린 사장님의 동선에 익숙하다 빠른 동선 둘이 같이 움직이니 타이밍이 안 맞을 때도 있었다.


손님이 많을 때야 둘이 일하면 좋지만 한산할 때는 굳이 둘이 있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일을 하려다 포기하고 엄마의 카페에서 일하기 위해 실습하는 거라고 했다. 그때 직감했다. 아, 난 이번 달로 끝나겠구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사장이라도 그렇게 할 터였다.


세 달을 채웠을 때 사장님은 어려워하며 말을 꺼냈다. 난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한다고, 애초에 세 달 먼저 해 보고 결정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두두니 씨한테는 우리 카페 커피 평생 무료예요.

사장님은 마지막 선물 같은 말을 남겼다.


3달 동안의 알바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시원 섭섭했다.

결혼 후 첫 사회생활을 나름 잘 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부딪혀서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전까지만 해도 재고 따지고 몸 사리느라 흘려보낸 기회들이 있었다. 와락 달려들어 시작하기엔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젠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걸음을 하나 내딛는 데 따르는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내게 딱 맞는 일을 찾는 건 흔치 않다는 걸 알게 된 거다. 첫 알바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것이다.


알바비는 최저시급을 받았고 액수에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나의 쓰임을 확인하고자 시작한 일이었기에 돈을 벌었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보통 처음 돈을 벌면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알바비 전체를 통으로 남편에게 넘겼다. 그동안 남편이 벌어 통으로 내게 넘겼으니 도 똑같이 한 것이다.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남편은 이걸 어떻게 쓰냐면서도 은근 좋아했다.


물꼬를 트면 물이 흐르기 마련이다.

사회생활에 발을 한번 디디니 이후 또 다른 일이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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