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바를 그만둔 시점에 나는 한 달에 한 번가는 동화 모임을 8년 즈음 지속하고 있었다. 동화 모임을 함께하는 멤버는 온갖 시행착오와 들락날락의 반복 끝에 글쓰기를 지향하는 멤버로 구성되던 참이었다.
8년 동안 글쓰기 모임을 했다고 하면 대단한 시간을 보낸 것 같지만, 동화와 그림책을 공부하고 발상하는 시간이 주였다. 글쓰기 과제가 있어도 이러구러 한 달을 지내다 빈 손으로 참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멤버들과 정이 쌓여 이야기 나누는 재미로 갔다.
실체는 이랬지만 그걸 모르는 지인들은 얘가 오랫동안 글쓰기 공부를 하는구나, 싶었나 보다. 한 지인이 내게 어느 기획제작사에서 프리랜서 구성 작가를 구하는데 샘플 원고를 한 번 보내보라고 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왔으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예전 같으면,
에이, 내가 무슨... 어떤 일을 하는지,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알바 3개월을 하고 나니
아, 몰라. 뭔지 모르지만 해보지 뭐. 해보고 안되면 말고.
하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무까끼함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난 소중하니까> by duduni
영상 제작을 하는 제작사였다. 시청, 구청 등에서 협찬하는 공익 광고나 공식 행사 홍보 등을 영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영상은 TV, 라디오, 교차로 전광판 등에 쓰이는 것으로, TV광고 시간에 방송되는 걸 본 기억이 났다.
메일로 시나리오 샘플과 써야 할 주제를 받았다. 알고 보니 제작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사정이 급했다.
먼저 주제에 관한 자료를 조사했다.
영상 길이는 40초.
이 시간 안에 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한 다음, 들어갈 영상과 자막, 내레이션을 배치시키는 구성안을 짜야했다. 이 구성안을 바탕으로 실제 영상이 만들어지고 방송이 송출되는 시스템이었다.
이전에 방송된 샘플 영상과 시나리오를 보니 어떻게 할지 대충 감이 왔다. TV광고에 관심이 있어 평소에 눈여겨봐 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주제에 맞는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영상을 찍으면 좋겠다는 그림이 그려졌다. 큰 그림을 짜고 나서 내레이션을 정하고 중요한 내용은 자막으로 넣었다. 내레이션을 성우가 읽을 때 몇 초 정도 걸릴지 실제로 읽어가며 예상 시간도 기재했다. 그렇게 만든 한 장의 구성안 시나리오를 메일로 보냈다. 같이 해보자는 연락이 왔다.
뿌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이 눈앞에 닥치니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다.
이 프로젝트는 10개월간 방송 예정으로, 10가지 주제로 한 달에 하나씩 영상을 제작할 거라고 했다. 제작사에서 진행하는 많은 프로젝트 중 하나와 계약을 한 것이다.
건당 작가비를 후불로 지급한다고 했다. 일하는(글 쓰는) 시간으로 따지면 알바 시급보다는 훨씬 높았지만, 사전 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대가로 따지면 그리 높은 액수는 아니었다.
제작사에서는 내가 쓴 시나리오대로 영상을 만들어 최종 완성 영상을 파일로 보내줬다. 내 글이 영상으로 구현된 걸 보는 기분이 참 묘했다.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 의도와 다르게 나온 부분이 쏙쏙 눈에 들어왔다. 시나리오를 넘기면 내 임무는 끝이었기에, 영상에 가타부타할 입장은 아니었다.
내가 짠 시나리오를 토대로 방송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기도 했다. 가장 긴장되는 건 주제를 받을 때마다 내가 처음 접하는 분야라는 점이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조사하고 공부해야 했다. 막상 시나리오에 쓰이는 내레이션이나 자막은 몇 줄 안되지만 글을 쓰는 작가는 전체를 샅샅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게 기본이니까.
우리 지역의 축제, 문화유산 소개 등은 자료도 많고 어려울 것이 없지만 청년 스타트업, 학교 밖 청소년 쉼터 등 해당 자료가 마땅찮은 경우도 많았다. 짧은 인터뷰가 들어가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런 경우, 필요한 곳에 직접 전화를 했다. 내 소개와 상황 설명을 한 다음 질문을 하고 받아 적어가며 답변을 들었다. 전화 설명으로도 그림이 잘 안 떠오를 때는 직접 찾아갔다. 공간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떤 컨셉으로 진행해야 할지 떠오르곤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정확한 내용인지, 부정적, 차별적 내용은 없는지 신경 썼다. 한눈에 들어오도록 단순 명료하게 전달해야 하니 핵심만 뽑아내야 했다. 수집한 자료 대부분은 다 쳐냈다. 이렇게 차츰차츰 경험이 쌓였다.
영상 제작사는 소규모가 많고 대부분 상주 작가가 있지만 프리랜서 작가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큰 프로젝트가 겹치거나 마감 시간에 맞춰 일을 해내기 힘든 경우였다. 보통 불시에 전화로 의뢰를 해 오고, 내가 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다. 일이 많을 때는 확 몰리고, 없을 때는 널널했다.
그래도 이 모든 걸 스케줄에 맞춰 내가 정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재택근무라는 점, 제작사와는 전화나 메일로 업무를 진행하는 점도 편했다. 어디에 매여있지 않다는 자체가 좋았다. TV를 보다가 또는 전광판을 지나다 우연히 내가 참여한 영상이 나오는 장면을 보는 것도 짜릿했다.
이후 다른 제작사에도 샘플 구성안을 보내 인연을 맺었다. 일은 차츰 여러 분야로 확장되었다. 공기업이나 종합 병원, 중소업체의 홍보영상, 기관의 교육 영상 등을 맡게 되었다.
모두 처음 하는 일이었다. 무슨 건을 맡든
아, 이건 내가 잘 아는 거야. 해 봤어.
이런 건 없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주제와 내용이었다.
영상 시간도 40초, 1분, 5분, 15분, 30분... 점점 늘어났다. 긴 영상은 그에 맞는 형식이 따로 있었다. 처음 접하는 스타일이었지만 나 스스로 익숙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일이 들어오면 초안을 잡은 후 의뢰한 광고주에게 이러이러한 컨셉으로 제작할 예정이라는 제안서를 제출해야 했다. 제안서는 당연히 작가의 일이었다.
여기서 무척 신기한 점이 있었다.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전체 컨셉을 정하는 작업, 즉 아이디어를 내는 작업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거다. 자료를 찾아 살펴보다 보면 이 건을 어떤 영상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컨셉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료를 읽을수록 흐릿하던 형태가 점점 또렷해지는 느낌! 가닥을 잡아 컨셉대로 제안을 하면 거의 반응이 괜찮았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컨셉 잡는 부분이 술술 풀렸던 건 동화 모임 덕이었던 것 같다. 글쓰기를 많이 한 건 아니었지만 사진이나 단어를 놓고 엉뚱한 발상을 하거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곤 했던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보고 상상을 확장해가는 습관이 은연중에 배어있었나 보다. 이런 연습이 도움이 된 게 분명했다.
설렁설렁 지낸 8년이 그저 흘려보낸 시간만은 아니었던 거다.
겪어내고 쌓아온 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콩 틈바구니를 지나온 물처럼 스치고 흘러내리면서 안으로 스며들었던 거다. 콩으로만 살았는데 나도 모르게 아주 느리게 자란 콩나물이 되어 있었다. (조, 좋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