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4종류의 백합 구근을 샀다. 향이 좋은 품종으로 고심해서 고른 거였다. 3가지가 꽃을 피웠고 향을 듬뿍 음미했다. 하나는 끝내 봉오리를 맺지 않았다.
올봄 다시 싹들이 올라왔다. 흙 속에 있는 구근이 개수를 늘렸는지 스무 개가량의 줄기가 올라왔다. 대부분 가느다래서 꽃이 맺힐 것 같진 않다. 두세 줄기만 굵고 튼튼하게 자라났다.
그중 하나가 유독 키를 높이 올렸다. 곧 천장에 닿을 기세였다. 휘어진 줄기가 꺾일까 봐 줄을 묶어 지탱해주었다. 봉오리가 맺히고 4가지 중 어떤 꽃일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꽃의 종류는 펴 봐야 알 수 있었다.
화알짝!
작년에 피지 않은 바로 그 꽃, 트라이엄 페터였다.
길쭉한 봉오리가 벌어져 나팔 모양을 하더니 뒤로 재껴지듯 화악 말려 활짝 피어났다. 진한 백합향이 진동했다.
아!
알싸함과 은은함이 뒤섞인 고급스런 백합향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었다.
by duduni
나의 산책 코스는 몇 가지가 있다. 코스는 그때그때 피는 제철 꽃이 포진한 곳 위주로 정한다.
이팝꽃이 만발했으니 이 즈음이면 아까시도 피지 않았을까?
오후 4시 무렵, 아까시꽃이 늘어선 코스로 발길을 옮겼다.
꽃향기는 밤에 더 짙어진다.
우리나라 산에 많이 핀 아까시 꽃 향기는 밤이 되면 산바람을 타고 내려온다. 낮에는 꽃에 코를 들이밀거나 언뜻언뜻 바람에 스치는 향기 정도만 맡을 수 있다. 내 경험상 그랬다.
저기 앞에 아까시 길이 내다보였다.
희끗희끗.
폈구나!
by duduni
모란이며 유채꽃 코스를 돌아다니던 지난 며칠 사이 뜸했던 이 길에 아까시가 다 펴 있었다.
훅.
바람에 스치고 들어온 향기.
하!!!
폐부 깊숙이 파고든 향기에 멈칫했다.
그 향기가 순식간에 나를 유년시절로 데리고 갔다.
우리 집은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만큼 전학도 잦아서 초등학교 때는 세 번의 전학을 했다. 네 곳의 환경에 적응하며 지내야 했다. 그 시절 기억은 희미하다. 그래도 드문드문 기억이 남은 건 모두 자연 속에 있던 장면들이다.
일 년 반 정도 머물렀던 도시 근교의 작은 군에 살 때였다. 지금은 도시가 되었지만 당시 친구 집이 과수원을 했던 걸 생각하면 시골이었다. 친구 집을 오가는 산 아래 길가에는 아까시꽃이 만발했었다.
햇살이 정면으로 얼굴을 비출 만큼 저물었을 시간, 아까시 잎을 하나씩 따며 깔깔거렸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아! 좋아한다! 아하하하~
그때의 우리는 이파리 따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만발한 꽃이 뿜는 시원한 향기가 우리의 숨 하나하나, 피부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 그리고 무의식 구석구석에 배어들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by duduni
그 시절 내 속에 배어있었던 그 향기가 지금, 나의 폐부에 훅 하고 파고들어온 것이다. 그리하여 내 속의 향기와 손을 마주 잡고 방방 뛰어노는 것이다.
울컥.
아름다운 유년의 한 장면이 마음속에 그림처럼 화라락 펼쳐졌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저물어가는 햇살, 맑은 새소리, 짙은 아까시 향기, 주황 노을빛 스민 친구의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저릿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어린 시절로의 시간 여행은 마음을 벅차게 했다.
향기의 힘이다.
후각은 어떤 감각보다 원초적이며 직설적인 듯하다. 내 기억 속의 냄새, 무의식 속의 향기는 시간의 개념을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다. 순간적으로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아까시는 백합 향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우아하기 그지없는 백합 향이지만 우리 산천 어디든 피어 어쩌면 흔할 수 있는 아까시 향이 주는 향수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어떤 좋은 향기가 유년의 아까시 향기에 견줄 수 있을까.
아까시 길을 걸었다.
미색 꽃이 바람에 떨어져 얼굴을 만지고 날아갔다.
바람을 타고 향이 지나갔다.
추억 속을 거닐었다.
좀 더 진하게 향을 만끽하고 싶지만 마음만큼 양껏 맡아지지 않았다.
저녁 산책을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밤이 되면 향기가 산에서 내려올 테니까.
다시 한번 시간여행을 할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