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서 미안은 하다만

지켜보고 있다!

by 두두니

위이잉 윙윙....

창밖에서 소음이 들렸다. 이어 아파트 10층 높이까지 풀냄새가 날아들었다. 방금 벤 풀 냄새. 내가 좋아하는 냄새다.

어느새 풀 베는 계절이 왔나 보네.

이맘때가 되면 공공 근로하시는 분들이 아파트 주변과 공원에 제초작업을 하신다. 들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달갑지 않지만, 모기와 벌레 때문이라도 하는 게 맞다.


장을 보러 차를 몰고 나갔다. 10차선 큰 다리를 건너가다 왠지 환한 느낌이 들어 강변 둔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어! 저거 뭐지?

넓은 둔치 풀밭에 노랑노랑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었다.

어머! 뭐야 뭐야? 언제 저런 게 핀 건데?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언니야 금방 보러 갈게!

그러고는 바빴다.

며칠 지난 오늘, 시간을 내어 아침 댓바람부터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장마라 하니 땅이 말랐을 때 얼른 한 바퀴 돌고 와야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노랑노랑이들을 보러 달려갔다.

아 놔! 또 없다! 또 없어! 에라이!

부지런한 공공근로 아저씨들이 또 깎아놓으셨다. 들판은 오늘 입대하는 훈련병 머리마냥 파르라니 깎여 있었다.

제초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짐작했어야 했는데. 내 불찰이로구나.

풀 깎은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는 왜 이리 좋은 거야? 200미터 전방에서 윙윙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새벽부터 작업을 한 모양이다.

쑹덩쑹덩 잘린 노랑꽃들이 땅에 누워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조의를 표했다.

잘 가, 기생초야. by duduni

허전한 마음을 안고 달리기를 했다. 슬렁슬렁 뛰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쭐레쭐레 다가왔다.

어라? 목줄이 없네?

뒤따라오는 주인을 팍 째려봤다.

한마디 해? 말어?

내적 갈등이 치열했다.

에이.

그냥 지나쳤다.


작은 다리를 건넜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웬 청년 두 명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다. 또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이기 때문이다.

민원의 여왕으로서 안전 신문고 앱으로 신고하는 데야 도가 텄지만, 직접 대면해서 따지는 데는 영 약하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입이 들썩대지만 대부분은 눈으로 욕을 하고 만다.


그런데 그렇게 그냥 지나가기엔 그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두 명의 청년은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체격에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낚싯대를 휙휙 휘어가며 시시덕거리며 물고기를 낚고 있었다. 속이 부글거렸다.


저런 건장한 애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큰 화라도 당하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게다가 너무 꼰대 같아 보일 수도 있다고.

나 말고는 지나가는 사람 누구 하나 이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까 개 목줄도 그냥 넘어갔는데... 얘들도 그냥 지나가?

이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청년을 지나쳤다.

그런데!

마음은 미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인데, 이놈의 발이 자기 마음대로 뒤돌아 섰다!


바짝 긴장한 목에서(아니, 내가 왜 긴장하는 거냐고요!) 심히 애를 쓴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기요, 여기 낚시 금지거든요?"

말했다! 좋았어! 목소리 1도 안 떨렸으!

두 청년이 휙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시큰둥한 얼굴로

"아, 예."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뭐지? 이 반응은? 이것뜰이!

난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주었다.

"이거 과태료 부과되거든요?"

'요'의 억양이 확 올라갔다. 한 명이 알았다는 제스처를 했다.

워워. 이만하면 됐어. 더 하는 건 오버야.

난 태연한 척 그대로 뒤돌아서 내 갈길을 갔다. 휘어진 길을 돌아가다 힐끗 보니 그들이 낚싯대를 걷는 게 보였다.

그래야지! 그래. 안 그러면 바로 신고 들어갈라 했다고. 쯧!


잉어(?). 이 물고기를 낚으려던 것임. by duduni


내심 흐뭇했다. 그냥 지나쳤으면 산책 내내 부들거릴 뻔했다.

말하길 잘했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낚시를 할 경우 과태료 최대 300만 원이다. 적발한다 해도 이걸 직접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다. 전에 한 번 신고전화를 한 적이 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구청에서 이걸 잡으러 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다. 각자가 알아서 안 하면 될 일을 참...


그러면서 한편 저들이 연세 지긋한 어른이었다면 내가 대놓고 한마디 했을까 싶다. 그냥 참고 넘어가 준 어른한둘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니 한결 편하게 지적질을 한 것도 있다. 꼰대 마인드이긴 한데 그래도 할 수 없다. 불법 행위를 한 건 그들이니까.

뉴스에 나오는 무서운 10대, 20대들을 보다가 저렇게 말이 통하는 청년들을 보니 얼마나 다행이던지. 내 지적을 빨리 받아들이고 낚싯대를 거둬간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젊은이들, 꼰대라서 미안해. 근데 앞으로 여기선 낚시질하지 마라~


아침부터 진 빼고 왔더니 몹시 피곤하다.


끝으로

일부 낚시하는 분들, 거 좀 정해진 장소에서 합시다. 댁들이 퍼지른 쓰레기 도로 가져가는 거 기본 아닙니까? 물도 더럽히지 좀 맙시다. 물이 깨끗해야 댁들이 좋아하는 낚시 오래 할 거 아닙니까?


지켜보고 있다. by dudu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