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있긴 있나 보다.
큰 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자 한숨 돌릴 시간이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유화를 배우고, 한 달에 한 번 동화 모임에 참석했다. 내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2학년 겨울 즈음 아이 학교에서 주최하는 학부모와 함께 하는 안동 탐방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안동은 결혼 전 친구들과 한 번 가 본 게 다였는데 코스를 보니 아이와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았다. 권정생 생가, 도산 서원, 이육사 기념관이 코스였다.
곳곳마다 해설사 선생님이 동행해 설명해 주었다. 학창 시절엔 몰랐었는데 내가 그런 해설 듣는 걸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동하는 족족 해설사 옆에 딱 붙어 눈을 초롱초롱, 고개를 끄덕끄덕.... 오만 리액션으로 경청하니 해설사는 눈을 나한테 고정하다시피 했다. 거의 1:1 과외였다. (다른 참가자들을 위해서라도 앞으론 자제해야겠다.)
동화 '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작가가 머물렀던 방은 한 몸 뉘어서 양쪽으로 팔을 뻗기에도 좁았다. 추운 겨울 응달진 곳이어서인지 더 을씨년스러웠다. 평생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던 작가였다. 생가를 직접 보니 그의 고단함이 바로 와닿았다. 성당 종지기로 살았다는 말에 가톨릭 교인으로 더욱 정이 갔다.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도 '권정생'하면 아리고 짠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동화를 썼구나, 경외심과 함께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본 바보스러울 만큼 순수한 작가는 모든 재산(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으로 인세가 많았으나 작가에게까지 전달이 안 되었다고 함)을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다.
해설사의 설명이 끝나고 고개를 돌리니 듣는 사람은 학부모 몇몇 뿐이고 애들은 마당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래, 애들은 노는 게 제일이지. 이건 학교에서 나를 위해 마련해 준 탐방이구나.
다음은 도산 서원이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정기 한 자락이라도 아이에게 닿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곳을 둘러보았다. 툇마루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니 터도 좋고 경관도 훌륭했다. 권정생 생가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양지바른 곳에서 다시 뛰어놀았다. 나는 장소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 서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이런 곳에서라면 공부가 절로 될 것 같았다.
마당 한쪽에 목련 나무가 고즈넉이 서 있었다. 흙 담과 처마 그림자를 병풍처럼 두르고 일필휘지로 그은 듯 가지가 뻗어 있었다. 구불구불 뻗은 가지 위로 막 영글고 있는 목련 봉오리가 꽃처럼 돋아나 있었다. 차가운 바람일랑 촘촘한 솜털로 막은 채 보란 듯이 쏘옥 돋아있는 꽃봉오리.
한낮의 겨울 햇살이 축복하듯 쏟아져 보송보송한 솜털이 은빛으로 반짝였다. 가지 위로 쏙쏙 돋은 꽃봉오리들이 까르르 웃음을 날리며 뛰어놀고 있는 저 아이들 같았다. 그것은 희망이고 생명이었다. 꿈이고 미래였다. 꽃봉오리 위로 쏟아진 축복이 내 눈으로 들이 비췄다. 축복 같은 이 장면을 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고즈넉이> oil on canvas 90.9×65.1cm by duduni
수묵화 느낌으로 그렸다. 회벽을 칠하듯 벽을 칠하고 푸르스름한 처마 그림자를 드리웠다. 최대한 단순화한 배경 위로 목련을 얹었다. 작은 문 틈으로 흐릿한 서원의 모습을 별책부록처럼 집어넣었다. 싸인도 벽에 조각을 파듯 음각 느낌으로 그려 넣었다.
겨울 서원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곧 피어날 꿈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벅찬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양지바른 곳을 잠깐이라도 벗어나면 연신 옷깃을 여며야 했다. 겨울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목련 외에는 죄다 앙상했다. 메마르고 거친 무채색의 풍경. 하지만 목련 꽃봉오리 때문일까? 희망을 품고 있어서인지 권정생 생가에서처럼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험난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희망을 품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가 견디는 시간의 온도가 다를 거라는 걸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서원 가장 깊은 곳을 둘러보았다. 돌아서서 문을 나서는 그때,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햇살이 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햇살은 레드카펫을 펼치듯 빛의 융단을 깔아 두고 마중 나와 있었다.
내리쬐는 볕을 정면으로 받은 대나무가 갓 피어난 듯 싱그럽게 반짝였다. 환영 꽃다발처럼 화려했다. 꽃다발을 통과한 햇살은 세월이 묻은 나무 문 위에 그림자를 흩뿌려놓았다.
이 문을 통과한 당신, 앞으로 꽃길 걸을 거예요.
그 길 환하게 밝혀두었으니 즐기며 걸어가세요.
가는 길 내내 행복할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겨울 뜨락> Oil on canvas 72.7×72.7cm by duduni
나무 문은 물감을 두껍게 올린 다음 실제 무늬처럼 뾰족한 칼등과 송곳으로 파서 나무 결을 만들었다. 명도의 차이에 신경 써 그린 그림이다. 문이 다 마른 후 대나무 그림자를 흘리듯 그렸다. 싱싱한 연두색 이파리 색을 살리는 것이 의외로 힘들었다. 망친 색 조합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화룡점정으로 쇠로 된 손잡이를 그렸다. 실제 손잡이처럼 보이도록 굉장히 세밀하게 그려 넣었다.
그림을 본 그림 선생님이 안타까운 얼굴로 한 말이 생각난다.
"너무 아까워요."
늦게 시작한 것이 아깝다는 뜻이었다. 30대 후반이었으니 그런 말을 했던 거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괜찮아요. 늦었다고 생각 안 해요. 지금부터 하면 되죠.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몇 년간 열심히 그렸고 몇 년은 쉬었다.
그림 그리면서 내내 꽃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서원 가장 깊은 곳의 문에서부터 뻗어 나온 그 꽃길이었다. 생활에 치어 쉬기도 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편, 그 시기에 참여하던 동화 모임은 단순히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나간 것이었지 진지하진 않았다. 별 뜻 없이 시작한 모임에서 시간이 쌓이고 꿈이 그 모양을 갖춰갔다. 꿈의 형태가 견고해지고 시간의 두께가 모이더니 어느새 동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이제 동화 모임은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모임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권정생 동화작가의 생가에 가고 도산 서원을 갔던 그날의 인연이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싶다.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내 동화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계속 글을 쓸 것이다.
더불어 한동안 덮어두었던 화구 통도 들춰봐야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이른 날이니까.
https://youtu.be/HOMRGomdfag
<come out and play >
- Billie Ei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