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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니 Oct 06. 2021

미술은 왜 불편하고 멀기만 할까

일상 예술가의 즐거움

그림을 함께 배운 몇몇 사람들과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어느 요양원의 중앙 홀에 무료로 전시를 할 수 있다기에 장소를 보러 갔다. 천창에서 빛이 잘 들어오고 그림을 걸 수 있는 와이어와 조명이 있었다.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과 간병인, 보호자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전시 팜플렛(엽서)을 만들고 배너도 제작해 요양원 입구에 세웠다. 그림을 배치하고 철사를 잘라 그림을 걸었다. 각자 그림이 들어간 명함도 만들어 놓아두었다. 첫 전시회였다.  



1회 그룹전 팜플렛 앞면 _ 프란체스카의 집

누군가에게 내 그림을 보여준 건 처음이었다. 가족들과 수강생들이 보러 왔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도 그림을 감상했다. 삭막한 요양원에 그림이 걸리니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고 사람들 표정도 밝아진 듯 보였다. 정식 갤러리는 아니지만 전시라는 걸 해본다는 의미에서 내 기분도 밝았다.

2주간의 전시가 열리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요양원의 보호자인데 면회를 왔다가 그림을 보고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단다. 목련을 그린 <고즈넉이>와 도산 서원의 문과 대나무를 그린 <겨울 뜨락>이 마음에 든다며 그림 가격을 물었다.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첫 전시에 선보인 3점의 그림 중 두 점이 마음에 든다니!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당 얼마(00원)라고 말했다. 그는 가격을 듣자마자 바로 사겠다고 했다.

응? 두 점 다?

순간, 싸한 기분이 들었다. 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이 그림이 둘 다 30호인데요, 호당 00원이니까 이런 경우 00원 × 30호로 계산해서 총 000원으로 판매를 하게 됩니다."

그러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당황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 짐작이 맞았다.

그림 가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했다. 이 그림은 얼마다,라고 딱 정해서 말해주지 않고 굳이 곱하기를 하도록 만드는 게 잘못된 거다. 그는 말을 흐리며 전화를 끊었다. 죄송하기도 하고 김이 빠지기도 했다.

이런 관례들이 미술과 사람들의 거리를 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호당 어쩌구 라고 말하지 않아야겠다.)


전시를 보러 가면 뭔가 불편하다. 큰 기획 전시장은 입출구 표시도 잘 되어 있고 전시에 관한 설명도 상세히 붙어 있어 그런대로 괜찮다. 오히려 작은 갤러리에서 숨 막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들어서면 못 올 곳에 온 것처럼 적막하다. 괜히 내가 들어가서 고요의 공간에 흠집을 내는 느낌이다. 갤러리의 분위기는 왜 그렇게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방(그림)을 지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누가 들어오든 말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경우는 기분이야 나쁘지만 어쨌거나 조용한 감상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다. 너무 빤히 쳐다보는 경우도 문제다. 이건 부담스럽다. 응대는 하되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네모 모양의 방을 시계로 돌아야 하는지 반시계로 돌아야 하는지 방향도 헷갈린다. 손으로 방향을 안내해 주는 센스를 발휘해 주길 바란다. 


제일 안 좋은 경우는 작가건 지인이건 자기네들끼리 테이블을 차지하고 아 수다를 떠는 거다. 그 소음이 그림 감상에 무척 방해가 된다. 관람객이 오면 목소리를 낮추는 매너가 필요하다.

또 안 좋은 경우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들어가자마자 딱 들러붙어서 과잉 설명을 하는 것이다. 설명은 관람객이 요청할 때 하는 게 맞다.       


이렇게 첫 전시회가 끝났다. 내 그림을 점찍어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겼다. 그림 그리는 붓끝에 날개가 달린 기분이었다.


일 년 후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전시를 열었다. 그림을 걸고 있는데 요양원의 간호사가 다가와 말했다.

"사람 얼굴이 있는 그림은 걸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밤에 어르신들이 지나다니시다가 놀라실 것 같아서요."

전혀 생각 못한 점이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곳은 전시가 주가 되는 장소가 아니기에 그분들께 맞추는 게 맞았다.

당시 우리 그림의 1/3 정도에 사람 얼굴이 있었다. 전시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때 만든 팜플렛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앞으로 무료 전시장에서는 전시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3회 그룹전 팜플렛 _ DCU갤러리

3회 전시는 처음으로 대관료를 내고 정식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다. 신문, 방송에도 무료로 홍보할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할 수 있는 곳이면 다 홍보를 했다. 전시를 하는 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니 홍보는 많을수록 좋다.        

 

전시를 열어보니 내 친구나 지인들 중에서도 누가 그림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는 이도 있고,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무르는 이도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러 오는 이도 있었다. 많은 축하와 칭찬을 듣고, 오랜만에 반가운 만남도 가졌다.  


4회 그룹전 팜플렛 _ 드망즈 갤러리


마지막 4회 전시의 규모가 가장 컸다. 전시장도 크고 작품 수도 관람객도 많았다. 모르는 분이 내 그림을 구매한 뜻깊은 전시이기도 했다.

전시를 열기 전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림이 좋든 안 좋든 일단 보러 들어오고 싶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편안한 전시가 되도록 하고 싶었다.


카페처럼 잔잔한 음악과 커피 향이 흐르게 하고 관람객이 오면 반갑게 응대했다. 그림에 제목을 붙여보는 나름의 작은 이벤트도 준비했다. 딱딱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그림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찾아온 관람객들이 따스한 분위기에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미술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싶은 전시가 되도록... 의도했던 대로 무사히 잘 치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대관을 넘어 언젠가는 초대전을 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by duduni


좋은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그림이라 생각한다. 주제나 기법, 아이디어가 뛰어난 그림도 있겠지만 감상자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 말하고 싶다.

멀기만 했던 미술이 글을 통해 한층 가깝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글과 함께함으로써 보다 쉽게 그림 속으로 빠져들 수 있기를 바란다. 분석, 비평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즐기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쓴 또 하나의 목적은 일상 속에서 예술 창작을 하는 일상 예술가가 많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특출 나지 않더라도 일상의 한 자락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글로 음악으로 미술로 표현하고, 그 결과물을 서로에게 선보이고 감상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삶과 예술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활동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다채로우며 충만하게 만들거라 확신한다.      


마지막 전시를 한 지 3년이 지났다. 반짝반짝 빛났던 내 눈빛이 그 사이 빛을 잃고 탁해졌다.

너무 오래 쉬었다. 그린 그림에 대해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글을 써 보니 그리는 행위가 더욱 그리워진다.

다시 붓을 들어야겠다.

다시 내 안의 빛을 찾고 싶다.

그리하여 계속 빛나고 싶다.


<이 글은 방금 발행한 브런치 북 '붓을 들자 빛이 났다'의 에필로그입니다. >


https://youtu.be/Iz1KUDa-OU0

  <우리 시작>

이진아 with 샘김, 권진아, 정승환, C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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