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시간

철학이라는 패키지 투어에서 길을 잃다

by 안작가

대학교 강의실, 먼지 낀 창틈으로 들어오던 오후의 햇살과 함께 들었던 이름들. 라캉, 들뢰즈, 스피노자. 그 시절의 미술사 수업은 마치 암호 해독 시간 같았다. 교수님들의 지적인 향연이 아름답고 부러웠던 시간들이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낡은 기억의 서랍을 열듯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을 펼쳤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오랜 친구와 함께 읽기로 약속하고서 말이다.


친구와 전화기 너머로 나눈 첫마디는 뜻밖에도 "프롤로그, 나만 이해 안 가니?"였다. 서문에서부터 막힌 숨은 책장을 넘길수록 가빠졌다. 이 책은 친절한 가이드를 자처하지만, 정작 독자인 나는 유럽 10개국을 10일 만에 주파하는 패키지여행의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자, 여기는 라캉입니다. 사진 찍으세요. 다음은 들뢰즈입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강신주.jpg 이 책은 오랜 세월 동안 나와 함께한 흔적이 느껴진다.

나는 캔버스에 물감을 한 겹 한 겹 올려 깊이를 만드는 '글레이징' 기법을 좋아한다. 독서도 그렇다. 한 철학자의 눈동자를 깊게 들여다보고, 그가 왜 그런 색채의 사상을 가졌는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병렬 독서를 즐긴다. 그런데 이 책은 너무 많은 철학자가 쉴 새 없이 등장한다. 한 챕터를 읽고 나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유튜브를 뒤지거나 그 철학자의 다른 원전을 찾아 헤매야 했다.


맛있는 코스 요리를 기대했는데, 가짓수만 많은 뷔페 접시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랄까. 접시 위 음식들은 서로 섞여 고유의 맛을 잃어갔고, 내 머릿속은 따로국밥처럼 노는 지식들로 복잡해졌다. 저자의 강연 영상을 찾아보아도 그 낯섦은 좁혀지지 않았다. 공감되지 않는 지식의 나열은 화려하지만 내 방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추상화 같았다.


문득 거울 속의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 불편한 친절함에 저항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철학의 백과사전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철학자와 나누는 깊고 고요한 대화였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철학자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중 단 한 문장이라도 내 삶의 붓질에 영향을 주는 것일 테니까.


오늘 밤,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야겠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 난해한 문장들이 실은 우리 삶이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반증은 아니었을까 하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 거실에 걸 필요는 없듯이,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 피곤한 독서를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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