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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나

안작가 덕분

by 안작가

하나의 역할에 충실한 내가 되고 싶지만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16시간 동안 다중 인격체로 활동하다 하루를 마친다. 온전히 나인 시간은 잠자리에 들기 전 나를 들여다보는 지금, 23시에서 24시 사이다. 이 시간은 온전히 나를 채우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교사로서 자괴감을 느끼거나, 엄마로서 지치고, 아내로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이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잊거나, 치유하거나, 회복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을 기쁘게 맞이한다.

미술 선생님, 두 딸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두 분의 딸, 두 분의 며느리, 그 또는 그녀들의 친구 등등 인 나이다. 별생각 없이 바쁘게 인생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40대 중반이 되니 숨이 차서 배역을 조금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 선생님은 나의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생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내려놓을 수 없는 나의 정체성이다. 두 딸의 엄마도 두 딸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두 아이가 독립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건 내가 20대 후반에 성숙한 성인으로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함부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 인생이 무책임한 형상이 돼버릴 것 같아서 맘대로 할 수 없는 정체성이다. 만약 상대를 잘못 선택했다는 치명적인 오류들이 발견된다면 그때 또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지만 현재까지는 내 선택에 후회가 없기 때문에 배우자로서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엄마, 아빠의 딸이라는 정체성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사회적인 통념에 따라 자식이기 때문에 도리를 다해야 하는 건가?라고 생각해 보지만, 이런 생각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내가 받은 게 많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대로 하자면 아직 나는 그분들께 절반도 해 드린 게 없다.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분들이고 내가 걷고 말하고 스스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생계와 안전, 교육 등을 책임져주신 분들이다. 이런 생각을 이 글을 통해 비로소 하게 되니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든다.

미술선생님,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친구, 직장 동료, 작가, 화가 등 모든 정체성이 내가 완전한 나이게 만드는 블록같이 소중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가끔 버겁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대체 불가능한 내가 된다. 작가인 정체성으로 나를 바라보니 내가 더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글쓰기의 매력이다. 안작가 덕분에 복잡했던 내가 정리가 된다. 이래서 글 쓰는 시간이 나를 달래는 치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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