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작은 화단에 목련나무가 있다. 5년 전 처음 이사올땐 없었는데 관리 할아버지가 심으신 건지 재작년 봄 즈음부터 흰 꽃을 피어내고 있다.
목련을 좋아한다. 큼직한 흰 꽃잎이 복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색이 희어서인지 어딘가 고결한 분위기도 풍겨서다.
활짝 피었다 땅으로 툭툭 져 버리는 모습도 한 때는 지저분하다고 여겼는데 그것 또한 목련이 살아가는 과정이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실 예전엔 목련이라는 이름에 선입견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생수가 적었던 시골 학교엔 한 학년당 1반 2반이 다였다. 그리고 '목련반'이 있었다.
정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만 모아놓은 특별반이었다. 단순히 공부에 관심이 없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고 지적 능력에 작은 문제가 있었던 친구들만 모아놓은 반.
목련반 친구들을 놀린 적은 없다. 하지만 마음속으론 모자란 애들이라는 못된 편견을 새겨놓았다.
어느 날인가 그반 남자애와 대판 싸운 적이 있다. 나 혼자 집으로 가던 길, 괜히 다가와 내 머리를 때리는 게 아닌가. 나도 같이 머리를 후려치면서 밤톨처럼 짧았던 그 애의 잡히지도 않던 머리채를 붙잡고 치고받고 싸웠다. (난 어릴적 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쟤가 어제 나 때렸다며 억울함을 털어놨고 때때로 마주칠때마다 '저 바보 같은 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해 다녔다.
5학년 때였나 매일 같이 학교 가자며 우리 집에 찾아오던 목련반 친구가 있었다. 난 동생이랑 가야 된다고 오지 말라고 얘기해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집 문을 두드리던 친구. 같이 가기 싫어서 일찍 집을 나선적도 많았다.
친구는 내 마음이 상하는 말을 몇 번 했었다.
화장 안 한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고 "너네 엄마, 할머니인 줄 알았어." 빨간색 우산을 가지고 출근하던 아빠를 보고 "너네 아빠 이상해 왜 여자 우산 쓰고 다녀?"
정신연령이 어려 악의 없이 하는 말이겠거니 지금이야 이해가 되지만 그땐 그런 말을 막 내뱉는 그 친구가 미웠다. 화를 벌컥 내며 내일부턴 나 먼저 가니까 오지 말라고 쏘아붙였고 그 이후론 같이 다니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시간 속에서 목련이라는 단어가 주던 묘한 편견과 몇몇 친구들에 대한 짜증은 다 풀어져 버렸다. 그 친구들은 지금쯤 뭘 하며 살고 있을까.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반 이름을 목련반이라 했을까.
목련을 검색해보니 꽃말은 숭고한 정신, 고귀함이며 백악기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꽃 중 하나라고 나온다. 끈질긴 생명력, 그 강인함을 닮으라고, 꿋꿋하게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 아닐까. 그 시절 '목련'들은 그 이름대로 꿋꿋히 어딘가에 뿌리내려 잘 버티고 있을 것만 같다.
집 앞 목련나무를 아이와 함께 하루에 한 번 핸드폰으로 찍고 있다.'작은 키'로 친구들에게 은근한 놀림을 받아서인지 자꾸 큰 것만 좋아하고 "나 키커? 발도 커?"몇번씩 묻는 아이에게 한 번에 쑥 크는 건 없음을 알려주기 위해 찍는다. 곧 있으면 봄이 와서 얼어있던 목련 나무에 싹이 나고 꽃봉오리가 열릴 때, 우리가 같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을 넘겨가며 어느새 꽃이 핀 나무를 감상하기 위해서.
"목련이 찬바람도 맞고 눈도 맞고 추위에 덜덜 떨더니 이렇게 꽃이 피었어. 우리 딸 키도 한 번에 크지 않아. 목련도 서서히 컸잖아. 윤이 키도 숨어있다 어느 순간 보면 훌쩍 자라있을 거야.라고 말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