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이다. 일어나 창문을 보니 어째 날이 흐리다. 서둘러 아이에겐 요거트를 주고 준비를 시작했다. 물기가 싹 마른 어린이집 식판을 파우치에 넣고 요즘 젓가락질에 재미 들린 딸의 요청으로 포크 대신 젓가락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아이 옆에서 사과를 깎아 나도 먹는 여유를 잠시 부리고 옷을 입혀주고 단정하게 머리도 묶어주었다. 아유 이뻐라. 동글한 뒤통수 한번 만져보고 양치와 세수를 도와주고 양말과 패딩을 꺼내왔다.
"오늘은 많이 못 놀고 가네." 울상인 아이에게 늦게 일어나서 그래. 이따가 끝나고 더 많이 놀자 는 말로 달래고 집을 나섰다. 1층에 도착하니 밖에 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다시 우산을 가지고 와 천천히 손을 잡고 걷는다.
전엔 물이 많이 고인 부분만 밟으며 물 튀는 걸 즐거워하더니 오늘은 구두 젖는다며 조심히 피해서 간다.
우산 하나를 나란히 썼더니 내 왼쪽 옷과 어깨 부분이 젖는 걸 보고 엄마 춥겠다 감기 걸리겠어 하길래 엄만 집 가서 드라이기로 말리면 된다 했다. 하나둘씩 사소하고 세심한 부분을 눈에 담는 딸이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다.
무사히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사실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무감해지고 이 일상들을 당연스레 여기는 일이 많아졌다. 일상이 쌓일수록 아이가 무탈하게 지내는 것도, 남편이 회사를 다니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두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그래서 조금만 어긋나도 마음속이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짜증이 나기도 하며, 내 자유를 뺏기는 억울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이럴 때면 감정의 곡선이 들쑥날쑥해지며 가족에게 되려 화를 내기도 해 스스로 바닥을 친다 느낄 때가 많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이 잦아져 요즘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라고 자주 생각을 환기시켜준다.
집 청소할 때 열린 창문 사이로 상쾌한 바람이 드나들 듯, 생각도 열을 식혀주고 갇혀있는 잡념들은 날려주는 환기가 필요하다. 적당히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가면 이미 익숙해져 버린 소중한 존재들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모두 집을 비우는 시간, 나도 집도 환기되는 시간이다.
한시간 후면 나름의 바쁜 사회생활 끝에 돌아오는 아이를 꼭 안아줘야겠다. 일이 바빠 늦는 남편에게 오늘도 수고했어 라 말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