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풍뎅이 Jun 10. 2020

엄마의 올갱이 국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에 머물던 2016년 4월 초 무렵, 원래도 예민했던 난 예민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밤낮으로 유축해 수유를 하던 통에 입맛은 뚝 떨어졌고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 조차 생각나지 않고 우울하기만 했다. 

-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 나: 없어. 그냥 밥 먹으면 되지.

매일 엄마는 퇴근 전 저렇게 물었고 난 똑같이 대답했다. 맥 빠질 법 한데 그럼에도 엄마는 많은 음식을 뚝딱 만들어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세 자매를 키울 때 기댈 곳 없이 외롭고 힘들었다던 엄마는 딸에겐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돼주려 쉬는 날엔 들에 나가 민들레 잎을 뜯어와 빨갛게 무쳐주고 뽀얗게 푹 끓인 곰국, 직접 반죽을 치대고 밀어서 만든 칼국수. 그리고 어릴 적부터 많이 먹었던 올갱이 국을 끓이며 내 입맛을 돋워주려 무진 애를 썼다.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조용한 집에서 생후 20일쯤 된 딸과 부추를 넣고 끓인 올갱이 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눈물을 흘렸다. 산후 우울감 때문만은 아니고 잔뜩 날이 서있는 딸을 그냥 받아주던 엄마 아빠에게 미안해서다. 게다가 엄마의 챙겨주려는 애쓰는 마음에 자꾸만 먹먹해져서 그렇기도 했다. 조리를 마치고 신혼집으로 돌아가는 날, 엄마는 잔뜩 얼린 올갱이국, 곰국, 밑반찬을 바리바리 챙겨 우리 차에 실었다.

집에 돌아와선 아이가 낮잠 잘 때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올갱이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그러고 보니 올갱이는 옛날부터 나와 함께였다. 


어릴 적 올갱이는 그냥 올갱이였다. 누구나 알고 있고 많이 먹는.

살던 곳을 벗어나 한 시간 거리의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단짝이 올갱이를 모르는 걸 보고 그제야 누구나 아는 올갱이가 아님을 알았다.(같은 충청도였는데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적, 혹시나 알까 회사 동생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 그녀에게도 낯선 생소한 말이었다.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봤는데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고 한다. 충청도는 올갱이, 경남은 고둥, 경북은 고디,골부리, 전라도는 대사리.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그 맛은 하나일 거다.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쌉사래 한 맛.


우리 가족에게 '올갱이'는 든든한 식재료 그 이상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괴산은 올갱이가 참 많았다. 그래서 날이 좋을 때는 개울로 가 크고 작은 바위를 들춰 그 밑에 다닥다닥 붙은 올갱이를 뗐다. 가져간 바가지에 그득 차면 집에 와 엄마가 박박 씻어 커다란 솥에 삶았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이쑤시개로 껍질 속 살을 쏙쏙 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짭조름하고 처음 씹을 땐 쫄깃하면서 끝 맛은 약간 씁쓸한 흙내음이 난다. 우리가 먹는 동안 엄마가 올갱이 살을 부지런히 빼내 냄비에 된장을 풀고 우거지(또는 부추)를 넣고 마지막으로 올갱이를 넣어 푹 끓여 한 대접씩 퍼주면 각자 원하는 만큼 밥을 말아먹었다. 뜨끈하고 구수한 국물은 어린 언니와 나 동생 입맛에도 딱 맞을 정도로 맛있었다. 이렇게 개울에서 올갱이를 잡아 집 와서 삶고 국까지 끓여먹고 나면 일요일이 거의 다 지나있었다. 교대 근무를 하던 아빠는 주말 없이 일을 했는데 어쩌다 쉬는 일요일엔 다 같이 개울을 갔던 게 유일한 가족과의 시간이었는데 그래서 가끔 개울에 나가는 날은 들뜨고 설레었고 나갈 때 입을 옷을 고르느라 동생과 난리 법석을 부리기도 했다. 올갱이를 생각하면 이 시간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점점 자라고 타지 생활을 시작하며 같이 올갱이 줍는 일은 없어졌고 이젠 더 이상 번거롭게 이쑤시개로 살을 빼지 않아도 마트에서 예쁘게 포장된 올갱이 살을 살 수 있다. 돌만 들추면 있던 올갱이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개체수 보호를 위한 포획금지 기간에는 올갱이 잡이가 불법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얼마 전, 엄마 아빠와 우리 부부, 딸아이와 맛있다는 올갱이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괴산에는 올갱이 해장국 집이 정말 많다.)올갱이도 듬뿍 들어가고 다진 양념 장도 들어가서 얼큰했다. 진짜 맛있다며 한 뚝배기를 다 비웠는데, 먹고 나선 영 속이 더부룩했다. 내겐 먹고 나면 속 편한 엄마표 올갱이 국이 딱인가 보다.

주부가 되고 가족의 세끼를 매일 차려보니 음식은 만드는 사람을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손끝이 서투른 내 음식은 얕은 어설픈 맛인데 엄마의 올갱이국은 엄마를 닮았다. 소박하지만 깊고 한결같은 맛. 그러고 보니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고 변치 않을 것은 엄마라는 존재가 아닐까.


엄마를 닮은 올갱이국 그리고 그 모든 '엄마표'들은 항상 내겐 그리움이고 미안함이다. 오늘은 엄마가 만들어 준 올갱이국이 먹고 싶어 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6월 일상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